[기억할 오늘]12.7
빌 브라이슨의 ‘발칙한 영국산책’에는 영국의 도로가 “체계적으로 보이는” 체계에 따라 놓여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런던을 중심으로 에든버러로 이어진 A1도로부터 시작해 시계방향으로 A6(런던-칼라일)까지 6개 주간선도로가 영국을 6개로 피자처럼 나누고, 고속도로(M)와 보조간선도로(B)들도 각기 포함된 조각에 따라 번호를 부여 받는다는 이야기. 예컨대 A11도로나 B1065 도로는 ‘1번’ 조각 속의 도로여서 거기서 빠져 나와 시계방향으로 달리면 ‘2번’영역의 경계인 A2도로와 만나게 되는 식이다. 다만 브라이슨이 “체계적으로 보이는”이라 쓴 까닭은 크고 작은 후속 도로들이 잇달아 건설되면서, 영국 지명의 알쏭달쏭한 발음들처럼, 적잖은 예외들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번호 순서가 뒤집혀 길을 찾느라 곤란을 겪곤 했다는 이야기를 전하며 브라이슨은 그 체계 속의‘비체계’들이 영국 문화의 한 특징이라고 썼다. 하지만 그도 그 배경에 대해서는 “모르겠다”고 고백했다.
‘M11’은 잭 리처의 소설 ‘하드웨이’에서 런던의 통근길 교통체증을 대변하는 도로로 언급되는, 영국 1번 조각의 방사선 고속도로다. 런던 동북부 해크니를 지나는 A12번 도로와 M11번을 잇는 연결도로는 60년대에 계획이 시작돼 80년대 말 착공했고, 1999년에야 개통된 진통(陣痛)의 도로로 유명하다. 토지 수용과 주택 철거, 원스테드(wanstead) 인근 녹지 보존 등을 둘러싼 주민들의 저항 때문이었다.
착공 시점 계획지구 내에는 빈집들이 많았다. 거기 터를 잡은 예술가와 개발반대 운동가들은 ‘원스토니아(Wanstonia)’라는 이름의 자치국가를 표방하며 공권력에 맞섰다. 1993년 12월 7일, 원스테드 조지 그린의 250살 된 밤나무를 살리기 위한 주민과 운동가들의 대립이 절정이었다. 법원으로부터 정식 주소까지 부여 받아 합법적인 주거지로 인정받은 나무를 지키기 위한 대치. 10여 시간에 걸친 공방 끝에 건설국은 나무를 베어내는 데 성공했지만, 여론의 뭇매를 맞아야 했고 당일 경찰 비용만 약 50만 파운드가 들었다. 이후로도 싸움은 끈질기게 이어졌다.
도로는 99년 10월에야 개통됐다. 약 350채의 집과 1에이커 녹지를 수용해 4마일이 채 안 되는 도로를 건설하는 데 10년이 걸린 셈. 공사 비용 2억5,000만 파운드가 들었다. 영국 도로체계의 예외에 대한 하나의 설명이 될지 모른다. 최윤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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