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베르사이유궁과 영국 윈저궁. 권위적이고 폐쇄적이다. 국민을 통치의 대상으로 여기던 옛 지배자의 공간이다. 지금은 국민 곁으로 내려왔다. 소박하고 친근하다. 대통령과 참모 집무실이 모여 있는 프랑스 엘리제궁. 1만1,179㎡(약 3,380평) 면적에 2층짜리 건물이다. 입구는 경찰 2명이 지킨다. 영국 런던 주택가에 자리한 총리관저 다우닝가 10번지. 3층짜리 건물에 총리 관저와 집무실, 비서실장실, 국무회의장이 함께 있다. 재무장관 등 내각 주요 인사와 집권당 원내대표 집무실도 이웃이다.
▦ 청와대는 웅장하고 위압적이다. 면적은 무려 25만㎡(약 7만6,000평). 특권층 지배자의 공간이다. 구조도 왜곡돼 있다.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본관은 비서동에서 500m나 떨어져 있다. 도보로 10분 거리. 관저에서 본관까지도 걸어서 10분 걸린다. 그래도 노무현ㆍ이명박 대통령은 매일 아침 정시에 본관으로 출근했다. 노 대통령은 참모들을 옆에 두기 위해 비서동에 집무실을 하나 더 만들었다. DJ정부의 김중권 청와대 비서실장은 “하루에도 몇 번씩 대통령과 집무실에서 독대했다. 수석들도 독대하는 일이 다반사였다”고 했다.
▦ 세월호 참사 석 달 뒤 국회에 나온 김기춘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 야당 의원이 “세월호 사고 때 대통령은 어디 있었느냐”고 묻자, “모른다. 대통령이 경내에 계시면 어디든 집무실이다”라고 답했다. 2년7개월 동안 침묵하던 청와대는 지난달 19일 대통령의 동선을 처음 공개했다. 홈페이지에서 “청와대에는 관저 집무실, 본관 집무실, 비서동 집무실이 있으며 이날은 주로 관저 집무실을 이용했다”고 밝혔다. 한광옥 비서실장도 5일 국정조사 기관보고에서 “대통령 관저에 집무실이 있다”고 답했다.
▦ 역대 정부 청와대 근무자들의 증언은 다르다. ‘관저’는 있어도 ‘관저 집무실’은 없다는 것이다. 청와대 지도를 보면 대통령 집무실은 ‘본관 집무실’과 비서동 내 ‘위민1관 집무실’뿐이다. 정유섭 새누리당 의원은 세월호 7시간 행적과 관련, “대통령은 7시간 노셔도 된다”고 했다. 박 대통령 측근인 조윤선 장관조차 대통령을 독대한 적이 없다고 고백했다. 박 대통령은 4년여 동안 출근하지 않고 주로 관저에 머문 것으로 보인다. 최소한 ‘사라진 세월호 7시간’ 동안 뭐 하며 노셨는지는 밝혀야 한다. 그게 국민에 대한 마지막 도리다.
고재학 논설위원 goind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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