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이후 370벌의 옷을 구입했다고 한다. 청와대는 이에 발맞추어 2년간 최고급 수납장 4개를 신규로 구매했다. 옷값만 4억 7,000만원이 넘는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 옷 구입에 사용한 돈이 본인의 사비인지를 밝혀야 하고 두 번째로 대통령이 이 많은 옷으로 패션외교를 잘 했는가에 대한 평가가 필요하다.
옷을 잘 입는다는 건, 옷에 담긴 설득의 힘을 깨닫는 것이다. 19세기 영국의 정치가, 시인이었던 에드워드 조지 불워 리턴은 “궁극의 드레서가 되기 위해 인간은 주도면밀하게 계산해야 한다. 인간은 매번 같은 옷을 입어서는 안 된다. 장관을 만나러 갈 때, 홀로된 부인을 만나러 갈 때, 욕심 많은 삼촌과 자신의 상속문제를 처리하기 위해 만나야 할 때, 제 자랑만 늘어놓는 사촌을 만나러 갈 때, 그때마다 다른 옷을 입어야 한다. 패션 외교만큼 섬세한 외교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패션의 전략이 필요한 각종 상황을 꼼꼼하게 설명해놓았다.
세계적인 정치 지도자 중에는 뛰어난 패션 감각으로 자신의 위상뿐 아니라, 자신이 대표하는 나라의 문화적 역량과 이미지까지 업그레이드하는 이들이 있다. 중국 시진핑 주석의 영부인 펑리위안의 패션 감각은 독보적이다. 몸에 딱 맞게 재단된 재킷을 고집하면서도 중국의 문화적 이미지를 연상시키는 액세서리를 절묘하게 사용한다. 중국의 현대 패션을 세계에 알리는 일도 열심이다.
서구에서도 르네상스 이후로, 패션은 각국의 치열한 외교의 장이었다. 각 나라의 패션 스타일링 방식은 일종의 무형자산이며, 이를 해외에 수출하는 일은 왕비의 몫이었다. 스타일링과 함께 옷의 디테일을 만드는 기술 이전까지 포함하는 꽤 묵직한 사업이었다. 오늘날 유럽의 패션 강국들, 가령 이탈리아는 소재 중심의 화려함을, 스페인은 검정색에 기반을 둔 고혹적인 아름다움을, 프랑스는 장인의식에 토대를 둔 럭셔리를 유럽에 알렸다. 이 3국은 15세기부터 17세기까지 각 시대를 나란히 군림했다. 즉 왕비의 패션은 한 국가의 미감을 브랜딩 하는 최전선의 자리였다.
미국의 영부인 미셸 오바마가 방문 국가의 공식 만찬석상에서 보여주는 패션 외교는 고도의 정교함을 지니고 있다. 2015년 일본 총리 아베 신조를 맞이하는 만찬에서 그녀는 일본 출신의 미국 디자이너인 쇼지 다다시가 디자인한 기모노 풍의 디자인을 입었다. 같은 해 9월 중국 정상과의 국가 주최 만찬석상에서는 중국 출신의 미국인 디자이너 베라 왕의 디자인을 입었다. 자신이 만나야 할 대상에 대한 철저한 이해와 존경을 옷을 통해 보여주는 그녀는 진정한 패션의 외교관이었다.
백악관을 떠나는 그녀를 위해 패션 잡지 보그는 그녀를 12월호 모델로 썼다. 미셸 오바마도 언론으로부터 ‘누가 그녀의 옷값을 내주는가?’란 질문을 줄곧 받았다. 대통령의 옷값, 영부인의 옷값에 관심을 갖는 건 시시콜콜한 문제가 아니다. 아무리 저가의 옷을 섞어 입어도, 수많은 공적 자리를 소화할 경우, 입게 되는 고가의 드레스 비용이 천문학적이기 때문이다. 과거 케네디 대통령의 영부인 재클린의 경우, 시아버지가 그녀가 사랑한 패션 디자이너 올레 카시니의 옷을 사주었다. 고가의 옷이 아들에게 정치적 부담으로 돌아올 것을 염려한 배려였다.
미셸 오바마의 옷값은 어떻게 지불될까? 그녀의 비서관에 따르면 납세자의 세금으로 옷을 사는 일은 절대로 없으며, 오바마 대통령 또한 항상 옷을 사주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또한 디자이너들에게 옷을 빌리는 경우도 없다고 한다. 미셸은 염가의 옷을 구하기 위해 항상 할인 품목 의상을 찾아 다녔고, 디자이너에게 기증을 받게 될 경우에도, 행사가 끝나면 영부인은 그 옷을 기증자의 이름을 따서 국가 아카이브 기관에 기부하여 보관한다. 대통령의 불투명한 옷값의 출처에 오늘따라 내가 유독 예민한 걸까?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김홍기 패션큐레이터
▶ 박근혜 대통령 패션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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