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대전 희생자 위령 차원” 강조
피폭자 단체 “사죄해야” 목소리
일본 정부가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26일 진주만 방문과 관련해 “사죄하러 가는 것은 아니다”는 입장을 밝혔다. 앞서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히로시마를 방문했을 때 명확한 사죄를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대등한 답방 형식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이와 함께 미일간의 역사화해에 방점이 찍힌 아베의 진주만 방문을 두고 일본이 유독 미국에만 고개 숙인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6일 NHK에 따르면 아베 총리는 이날 일본을 방문한 애슈턴 카터 미 국방장관과 만나 “진주만 애리조나 기념관을 방문해 전쟁의 참화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이겠다”고 말했다. 카터 장관은 “오바마 대통령과 내게 기쁜 일”이라고 환영했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이에 대해 “전쟁 희생자를 위령(영혼을 위로함)하기 위한 것”이라며 (2차대전을 일으킨데 대한) 사죄를 위해 가는 것이 아니다”고 밝혔다.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 5월 미국 현직대통령으로는 71년 만에 원폭지인 히로시마(廣島)를 방문했을 때 직접 사죄를 하지는 않았다는 점도 일본 정부는 강조하고 있다.
스가 장관은 이어 “미일동맹이 희망의 동맹으로서 국제사회 평화에 공헌한다는 것을 세계에 강력하게 알리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베 총리도 주변에 “이것으로 전후 문제가 완전히 끝났음을 보여주고 싶다”며 “다음 총리부터 진주만은 역사의 하나로 삼는 쪽이 좋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長崎) 피폭자그룹 일각에선 “미국 희생자에게 사죄하길 바란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교도(共同)통신에 따르면 나가사키원폭피해자협의회 관계자는 “일본군이 먼저 손을 내밀어 전쟁이 시작됐다”며 “사과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본피폭자단체협의회 다나카 데루미(田中熙巳) 사무국장은 “증오를 극복하려는 게 목적이면 중국이나 아시아에 대해서도 같은 태도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저널리스트 마쓰오 후미오(松尾文夫)씨도 “미일은 아베 총리의 진주만 방문으로 전쟁의 가시를 뽑게 되겠지만 문제는 일본과 동아시아의 관계”라며 “중국과 한국에도 (일본총리가 이들 국가의 전쟁희생자를 위령하는) 헌화외교를 하는 것을 과제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본 야당에서는 보여주기식 퍼포먼스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15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방일 및 정상회담과 관련, 쿠릴 4개섬(일본명 북방영토) 반환협상이 러시아측 태도변화로 난기류에 빠지자 새로운 외교이벤트가 필요했다는 지적이다.
도쿄=박석원특파원 s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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