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4월, 한 일본 소년이 TV 속 흑인 골퍼의 신들린 듯한 경기를 넋을 잃고 쳐다보고 있었다.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막 골프에 입문했던 소년은 그때까지만 해도 골프에 큰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18언더파로 마스터스 역대 최소타 기록을 갈아치운 이 흑인 골퍼의 ‘차원이 다른’ 경기는 다섯 살짜리 소년의 혼을 쏙 빼놨다. 이 때부터 이 흑인 골퍼는 소년의 우상이 됐다. 흑인 골퍼는 타이거 우즈(41ㆍ미국)였고, 이 경기를 보고 자란 ‘소년’ 마쓰야마 히데키(24)는 20년 후 일본 남자 골프의 ‘신성’으로 성장했다.
마쓰야마가 히어로 월드챌린지에서 정상에 올랐다. 세계 톱 랭커들이 출전한 대회인데다 자신의 우상인 우즈의 복귀전에서 차지한 우승이어서 의미가 남달랐다. 마쓰야마는 최근 5차례 출전한 대회에서 4승을 쓸어 담는 상승세를 보이고 있어 남자골프에 ‘마쓰야마의 시대’가 도래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마쓰야마는 5일(한국시간) 바하마 낫소의 알바니 골프클럽(파72ㆍ7,302야드)에서 열린 대회 최종라운드에서 버디 2개와 보기, 더블보기 각 1개씩으로 1타를 잃었으나 최종 합계 18언더파 270타로 우승을 차지하며 상금 100만 달러(약 11억7,000만원)의 주인공이 됐다. 마쓰야마에 7타 뒤진 채 경기에 나선 헨릭 스텐손(40ㆍ스웨덴)이 이글 1개와 버디 3개를 잡아내며 대추격전에 나섰으나 2타 차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마쓰야마는 앞서 10월 중순 일본 오픈에서 우승한 뒤 CIMB클래식에서 준우승을 했으며 10월 말 월드골프챔피언십(WGC) HSBC 챔피언스에서 또다시 우승했다. 이어 지난달 다이헤이요 마스터스와 이번 히어로 월드챌린지 우승 트로피까지 거머쥐면서 마쓰야마는 현재 남자 골프계에서 가장 ‘핫(hot)’한 선수로 떠올랐다.
이번 우승으로 전문가들은 ‘마쓰야마의 시대’를 전망하고 있다. 실제 마쓰야마는 최근 20라운드에서 89언더파를 치는 폭발력을 자랑하고 있다. 또 최근 출전한 5경기 가운데 4경기에서 4라운드 합계 18언더파 이하의 성적을 거뒀다. 골프황제 우즈의 전성기에 버금 가는 기량이다. 특히 타이거 우즈 재단이 주최하는 히어로 월드챌린지가 비록 이벤트성 대회지만 세계랭킹 1위 제이슨 데이(29ㆍ호주)만을 제외하고 내로라하는 선수들이 대거 출전한 만큼 개막전부터 언론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마쓰야마는 이번 우승으로 조던 스피스(23ㆍ미국)를 앞질러 세계랭킹 5위 안에 오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역대 남자골프 아시아 선수 최고 랭킹은 2008년 최경주(46ㆍSK텔레콤)가 기록한 5위다. 우즈는 경기 후 “마쓰야마는 이번 대회 우승으로 엄청난 자신감을 얻었다”며 “그는 굉장히 오랫동안 톱랭커로 머물 것”이라고 극찬했다.
4세 때 클럽 챔피언을 지낸 부친의 손에 이끌려 골프에 입문한 마쓰야마는 18세 때인 2010년 아시아-태평양 아마추어 챔피언십 우승으로 이듬 해인 2011년 ‘명인열전’ 마스터스에 출전했다. 그리고 그 해 아마추어 신분으로 일본프로골프(JGTO) 다이헤이요 마스터스에서 우승하는 파란을 일으켰다.
그는 2012년 아마추어 세계랭킹 1위에 오른 뒤 프로전향을 선언했다. 2013년 프로무대로 뛰어든 뒤 두 번째 대회인 츠루야오픈에서 데뷔 첫 우승을 거뒀으며 이후 다이아몬드컵, 후지산케이 클래식, 카시오월드오픈 등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등 루키 시즌에 5승을 거둬 사상 처음으로 신인왕과 상금왕을 동시 석권했다. 마쓰야마는 2014년 뮤어필드 빌리지 골프클럽에서 열린 메모리얼 토너먼트에서 우승하며 PGA투어 첫 우승을 거뒀다. 아마추어 시절 친구인 이시카와 료(25)의 그늘에 가려 일본에서는 2인자에 머물렀으나 PGA투어에서는 역전에 성공했다. PGA투어 우승은 통산 3승을 거두고 있다.
마쓰야마는 키180㎝에 몸무게 90㎏의 탄탄한 체격으로 서구 선수들에게 뒤지지 않는 힘을 지녔다. 이를 바탕으로 드라이버 평균 거리가 300야드를 웃돈다. 마쓰야마의 최근 상승세는 수치로도 그대로 드러나 2016~17시즌 PGA투어 평균 버디수 1위(라운드당 6.5개)에 평균타수 1위(67.524타), 상금 1위(237만6,000달러), 페덱스컵 1위(850점)를 달리고 있다.
김기중 기자 k2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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