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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결사 이국주에게 바라는 진짜 '한 방'

입력
2016.12.05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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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력이 철철 넘치는 이국주. 한국일보 자료사진
매력이 철철 넘치는 이국주. 한국일보 자료사진

이런 경우는 처음인 것 같다. 한 방송사에서 각각 다른 컨셉의 예능 프로그램이 있는데, 특정 연예인이 스토리라인을 갖고 한 프로그램에서 다른 프로그램으로 옮기는 경우 말이다.

이국주는 지난 1년 동안 ‘나 혼자 산다(MBC)’를 요즘 말로 ‘하드캐리’ 했던 주인공이다. 이국주가 등장하는 순간 ‘나 혼자 산다’는 먹방으로 변해버렸다. 그런데 식상한 내용은 아니었고, 이국주가 부지런하고 통 크게 음식을 만드는 모습이 재미있는 먹방이었다. 게다가 이국주는 웬만한 음식을 다 좋아하면서도 확고하게 구체적으로 어떤 품목, 어떤 식의 조리방식이 좋은지 똑 부러지게 말하고 해내는 스타일이라 보는 재미가 더 있었다. 이제 이국주가 TV에 나오면 수육이 먼저 떠오를 지경이다.

여기에 이국주의 매력은 또 있다. “사람들이 뚱뚱한 사람은 게으르다는 편견이 있는데, 그걸 깨 주고 싶어서 화장을 공들여 한다”는 이국주는 전문가처럼 자기 얼굴에 변화무쌍한 화장을 하는 장면이 자주 나왔다. 마치 유튜브의 인기 동영상을 보는 듯한 이런 장면은 ‘나 혼자 산다’를 순식간에 ‘마리텔’로 바꾸는 재미가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 ‘나 혼자 산다’에 잠깐 같이 등장했던 가수 슬리피와의 알콩달콩한 궁합이 좋았다. 둘이 과연 무슨 사이인지, 아주 친해 보이는데 공식적으로 연인이라고 밝힌 적은 없고, 그런 아슬아슬한 느낌이 주는 재미였다.

아마도 바로 이 마지막 이유 때문에 이국주가 프로그램을 갈아타게 됐을 것이다. 이국주는 ‘나 혼자 산다’의 출연진들에게 하차 소식을 전하면서 청첩장(물론 가짜)을 돌렸다. 슬리피와 가상 결혼을 하면서 ‘우리 결혼했어요’에 출연하게 됐다는 내용이다.

‘나 혼자 산다’는 그동안 잔잔하게 보는 재미를 줬던 프로그램이었는데, 지난 1년간 이국주가 ‘한 방’ 노릇을 해냈다. 이 프로그램을 그닥 챙겨보지 않았던 나조차도 이국주가 먹고, 요리하고, 화장하는 장면이 나오면 리모컨을 내려놓은 채 멍하니 보게 됐으니 말이다. 방송사 입장에서는 이런 ‘해결사’ 전력이 있는 이국주에게 ‘우결’의 구원투수 역할을 맡긴 게 아닐까.

‘우결’은 가상 결혼 프로그램의 원조다. 처음 방영을 시작한 게 2012년 9월이니까 벌써 만 4년이 더 지났다. 그동안 여기서 인기를 얻었던 커플의 여자 연예인은 황정음, 서인영 등 깜찍하고 예쁜 외모의 가수나 연기자였다. 그동안의 출연진도 대부분 그러했다. 그러나 최근 ‘우결’은 나이 어린 신인급 남녀 연예인들을 소개하는 등용문처럼 되면서 재미가 뚝 떨어진 게 사실이다.

그 사이에 ‘우결’을 본 따서 만든 타사 프로그램들이 더 큰 재미를 주고 있다. JTBC에서 김숙-윤정수 커플이 나왔고, SBS에서는 가상 커플이던 김국진-강수지가 실제로 연인이 됐다는 소식을 전해 화제가 됐다. 여기에 탈북자 여성과 노총각 셀러브리티들이 가상 결혼을 하는 종편 프로그램까지 있다.

이런 ‘우결’류 프로그램을 보면, 최근 가상 커플의 트렌드가 완전히 바뀌었다는 걸 알 수 있다. 예쁜 척하지 않는 여자(김숙)가 남자에게 큰소리를 치며 리드하거나, 인생의 쓴맛을 겪은 ‘돌싱 커플’이 수줍어하며 연애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시청자들은 해당 커플을 응원하면서 ‘진짜 사귀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우결’의 어리고 인지도가 낮은 가상 커플은 이런 라이벌 프로그램들에 비해 보는 재미가 훨씬 덜 하다는 게 ‘우결’이 처한 위기였다. 오리지널 프로그램인 ‘우결’이 그 변주와도 같은 타사의 경쟁 프로그램을 벤치마킹해서 ‘센 언니’, 혹은 ‘푸근하고 남자를 감싸주는 캐릭터’인 이국주를 출연시킨다는 것도 이색적이다.

이국주가 ‘우결’에는 구원투수로 나서지만, 이국주에게도 ‘우결’이 어떤 터닝포인트가 될 수 있다. 그동안 시청률을 책임지는 ‘원톱 예능인’으로 개그우먼이 꼽힌 적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우결’이 돌파구로 내민 카드 ‘나 혼자 살다가 우리 결혼한다’는 전에 없던 스토리 라인이고, 그 중심에는 일단 혼자서 뭐라도 만들어내는 이국주라는 캐릭터의 힘을 믿어보겠다는 제작진의 계산이 있을 것이다. 이국주가 최근 힘이 많이 떨어진 ‘우결’을 보란듯이 살려낸다면 예능인으로서의 능력치도 분명 다르게 대접받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왠지 모르게 이국주를 응원하게 된다. 유재석, 신동엽, 강호동, 김구라 등 이제는 식상해 보이는 ‘원톱 예능인’ 말고 신선한 ‘여자 원톱 예능인’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그리고 이국주가 그동안 ‘나 혼자 산다’에서 보여줬듯이 ‘뚱뚱한 여자’에 대한 편견을 많은 부분 씻어내 주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다.

간혹 뚱뚱한 개그우먼들이 “방송사 개그맨 공채시험에 붙었는데, 다른 뚱뚱한 체형의 여자 선배가 ‘캐릭터 겹친다’며 싫어했다”는 우스갯소리를 할 때가 있다. 뚱뚱한 건 외모의 한 부분일 뿐 캐릭터는 아니지 않나. 일부 시청자들이 이국주를 ‘뚱뚱한 여자 개그맨 캐릭터’라는 단순한 카테고리 안에 넣어버린 걸 후회하게 만들었으면 좋겠다.

또 한 가지, 이국주를 응원하는 이유가 있다. ‘우결’이 방송되는 토요일 오후 5시에는 이제 다른데 신경 쓸 일 없이 그냥 집에서 푹 퍼져서 편안하게 TV 리모컨을 돌리면서 이국주가 웃겨주는 걸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기 때문이다.

마더티렉스 (프리랜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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