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km로 제한됐던 2차집회부터
900->500->200m 매주 북상
“성숙한 집회문화가 이룬 성과”
‘성역’은 무너졌다. 박근혜 대통령의 즉각 퇴진을 요구하는 민심은 어느덧 청와대 100m 앞까지 다가섰다. 지난 10월29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첫 촛불이 타오른 이후 한 달 넘게 쉼 없이 이어진 청와대로의 북상 시도는 ‘말 할 수 있는’ 권리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동시에 성숙한 집회문화의 정착을 알리는 계기가 됐다.
3일 오후 6차 주말 촛불집회에 참가한 수천명의 시민이 청와대에서 100m 떨어진 효자치안센터에 운집했다. 현행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상 주요 국가기관 주변에서 집회를 허용할 수 있는 최근접 지점까지 도달한 셈이다. 경찰은 이번에도 경호 어려움과 교통불편, 주거침해 등을 이유로 시민들의 행진 요구를 불허했지만 법원 판단은 달랐다. 서울행정법원 행정6부(부장 김정숙)는 “집회의 자유는 시간과 장소, 방법과 목적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며 주최 측 손을 들어줬다. 그간 별다른 불상사 없이 즐기는 투쟁을 이어 온 시민의식이 판단 근거가 됐음은 물론이다.
청와대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불과 한 달 전인 지난달 5일 2차 집회 당시 촛불은 청와대에서 1.3㎞이나 떨어진 광화문광장 세종대왕상 앞에서 멈춰야 했다. 전환점은 100만명이 광화문광장에 집결한 3차 집회였다. 법원 결정에 따라 전례 없던 광화문 앞 율곡로와 경복궁역사거리(내자동로터리ㆍ900m 지점) 앞 행진이 전면 허용된 것이다. 이후 주말마다 청와대와 민심의 간격은 조금씩 좁혀졌다. 지난달 19일 4차 집회에서는 청와대와 500m 거리의 정부서울청사창성동별관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다시 일주일 뒤에는 200m 지점인 청운효자동주민센터까지 시민들의 발길이 닿았다. 법원은 이달 29일까지 평일에는 시민들이 이 곳에서 야간(오후 8~10시) 집회와 행진을 할 수 있도록 허락했다.
경찰은 법원의 잇단 퇴짜에도 주말 촛불의 북상을 율곡로 이남으로 제한할 방침이다. 서울경찰청 관계자는 “국가기관 경비ㆍ경호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할 수밖에 없고 경복궁역사거리가 대비 가능한 마지노선”이라고 설명했다. 김석호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참여 민주주의의 첫걸음은 신뢰인데도 청와대와 경찰만 국민을 믿지 못하고 있다”며 “이제 집회 장소는 의미가 없어진 만큼 박 대통령이 버틸 수 있는 시간의 문제만 남았다”고 지적했다.
허경주 기자 fairyhk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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