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칼로 사슴과 비버의 살을 발라낸다. 나무 위 오두막 안을 여러 동물 뼈로 장식해 놓기도 한다. 아버지는 그런 아이들을 대견한 듯 바라본다. 딸 넷, 아들 둘, 아버지 벤(비고 모텐슨)으로 이뤄진 가족의 면면은 기이하기만 하다. 아침엔 가족 모두 숲을 내달리며 체력을 기르고 무술을 연마하다가 밤에는 모닥불 주변에 모여 독서를 하거나 각자의 악기를 연주한다. 숲에 살며 세상과 동떨어졌다 해도 아이들의 지적 수준은 학력 높은 어느 어른 못지 않다. 문명을 멀리 밀쳐내는 듯하면서도 문명을 적극 끌어안고 사는 이 가족이 펼쳐내는 행각은 엉뚱하고도 유쾌하기만 하다.
도시에서 요양 중이던 엄마가 자살하면서 가족 안에 풍파가 인다. 불교신자인 자신을 화장한 뒤 재를 공항 화장실 변기를 통해 버려달라는 유언이 갈등의 불씨가 된다. 벤은 행동을 주저한다. 장례식을 방해하면 경찰에 신고하겠다는 장인의 협박 때문이다. 아이들은 엄마의 유언을 지켜주고 싶어한다. 우여곡절 끝에 가족은 장례식장으로 향하고 히피 정신으로 무장한 이들은 가는 곳마다 문화 충격을 일으킨다. 벤은 아이들과 작전을 짜 대형 마트에서 물건을 훔친 뒤 노엄 촘스키의 생일을 기념해 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눠준다. 벤의 여동생 집에 들려서도 ‘비정상’ 행동을 한다. 벤은 아이들과 아무렇지도 않은 듯 아내의 사인을 이야기하고 와인을 함께 한다. 교회에서 열린 장례식장을 찾아 당당하게 불교와 화장을 거론하기도 한다. 주변 사람들은 억장이 무너지는데 그들은 이 모든 행동이 당연하고 자연스럽다.
벤과 아이들의 자유분방한 말과 행동은 상식과 거리가 멀고도 멀다. 지나치게 솔직해서 불경하고, 너무나 지적이어서 불편하다. 하지만 그들의 면면은 웃음과 함께 묘한 통쾌함을 안긴다. 문명을 가장한 위선에 대한 관객의 잠재적 반감을 자극한다. 영화를 보다 보면 관객은 어느덧 벤과 아이들 편에 서게 된다. 아름다운 자연과 귓가에 맴도는 음악, 리듬감 있는 편집, 세련된 촬영이 벤 가족의 발칙한 일상을 발랄하게 부각시킨다. 올해 칸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 감독상을 받았다. 감독은 맷 로스. 지난 30일에 개봉했다. 15세 관람가.
라제기 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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