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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윗집 옆집

입력
2016.12.01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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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쿵, 쾅쾅, 드르륵드르륵, 사각사각……. 밤늦은 시간인데,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윗집이다. 얼마 전 새로 이사를 들어왔다. 그런데 이게 무슨 소리지.

층.간.소.음. 이 아파트에서 15년 넘게 살아오는 동안 피아노 소리를 빼곤 층간소음을 모르고 살아왔는데 그건 행운이었던 모양이다. 윗집 소음은 특히 밤에 잘 들렸다. 가구를 끄는 소리도 아니고 TV소리도 아니고 말소리도 아닌, 이 소음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9시가 되면 주무시는 부모님과 함께 살기에 이 시간 이후는 거실에서 살금살금 다니고 가능한 소음을 내지 않았던 터라, 뒤늦게 찾아온 괴상한 소음이 짜증스러웠다. 거슬리는 것은 둘째 치고 도대체 이 괴상한 소음의 정체가 뭔지 궁금했다. 인테리어 공사를 하면서 소음이 아랫집으로 잘 전달되는 바닥재를 썼거나, 바닥 공사하면서 실수가 있었던 건 아닌지, 그런 생각도 들었다.

당장 뛰어 올라가 윗집 문을 두드릴까. 경비실로 알리는 우회적인 방법을 쓸까. 처음 보는 사람, 그것도 윗집 사는 이웃에게 화를 내고 싶지는 않았다. 고민하다 며칠이 흘렀다. 소음은 그칠 줄을 몰랐다. 딱 또그르르르, 스르륵스르륵, 쿠궁.

일단, 마음을 가다듬고 책상 위에 흰 종이를 올렸다. 그리고 ‘1801호 님께’로 시작하는 편지를 적어 내려갔다. 일단 우리 집 소개부터. 부모님과 함께 이 아파트의 원주민으로 여태 살아왔다는 내용부터 썼다. 그런 다음, 1801호 님께서 이사 온 이후부터 전에는 들리지 않던 소리가 밤마다 들리는데, 인테리어 공사할 때 뭔가 건드린 건 아닌지 걱정된다는 내용을 이어서 적었다. 공사 부위를 한번 살펴보시라고. 결론은 ‘아랫집에 이런 사람이 살고 있으니 좀 고려해주시오’라는 의미였다. 편지는 하루를 묵혔다가 윗집 편지함에 넣었다.

회신은 금방 왔다. 저녁 무렵 벨 소리가 들려 나가보니 윗집 사는 분이었다. 그는 미안하다는 사과부터 했다. 이웃 간의 인사를 나누며 훈훈하게 헤어졌다. 그 후에 층간 소음이 사라졌을까. 아니올시다. 그분의 라이프스타일이 밤에 뭔가 작업을 하시는 것이었다. 소음이 사라지기는커녕 더욱 다양해졌다. 약간 강도가 줄어든 것 같기는 했다. 그걸로 나의 짜증과 그의 미안함을 퉁 칠 수 있었다. 그가 어떤 사람이며 왜 그런 소음이 나는지 알게 되니 그리 화가 나지 않았다. 이 밤에 또 뭔가 하시네, 그냥 그렇게 넘길 수 있었다.

최근에 작업실을 연남동에서 후암동으로 옮겼다. 일제강점기 가옥들이 많이 남아있는 후암동은 이전에 살았던 곳과 풍경이 달라도 아주 다르다. 일단, 소음이 다르다. 도로가 좁고 주차할 곳이 적어서인지 자동차 소음이 적다. 웅웅거리는 듯한 도로의 소음과도 떨어져 있었다. 단층이므로 층간 소음도 없다.

그런데, 새로운 소리가 있었다. 오래된 목조 연립주택이라 얇은 벽을 사이에 두고 두 집이 살고 있기 때문에 옆집 소리가 잘 들린다. 건넛집 아기가 우는 소리, 옆집 TV 소리, 골목을 지나는 여학생 수다 소리, 뒷집의 부부가 마당에 나와 이야기하는 소리 등등. 아파트의 층간 소음과는 또 다른 옆집 간 소음이다.

이상하게 옆집 소리는 신경이 덜 쓰인다. 그러고 보니 이 경험은 낯선 것이 아니었다. 어릴 적 살던 주택에서 많이 들었던 소리랄까. 옆집 부부 싸우는 소리, 볼륨을 크게 높인 티브이 소리 때문에 시험을 앞둔 내가 얼마나 불평을 했던가. 옆에 사람이 산다는 게 이런 거였지. 쓰레기 배출장소를 묻느라 옆집 아주머니와 인사를 나누게 되었고, 에어컨 공사하러 온 사장님이 마침 앞집에 사는 아저씨라 이것저것 묻기도 했다. 이웃이라는 생각에 이 소음에 신경이 덜 쓰인다. 사방에서 들리는 다양한 소음 때문에 밤에는 왠지 보호받는 느낌도 든다. 소음이 소리로 바뀌었다. 물론 음악처럼 좋은 소리는 아니지만 견딜만한 것이 되었다.

정구원 트임건축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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