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알리안츠그룹이 중국 안방보험에 매각하기로 한 한국 알리안츠생명에 새롭게 500억원을 투입했다. 이미 매각키로 한 회사에, 그것도 매각가가 35억원에 불과한 회사에 돈을 쏟아부은 것이다. 결과적으로 알리안츠그룹은 안방보험에 400억원이 훨씬 넘는 돈을 얹어서 회사를 파는 셈이 됐다. 알리안츠그룹은 도대체 왜 이렇게 밑지는 거래를 하는 것일까.
29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알리안츠생명은 ‘최대주주인 알리안츠SE(알리안츠그룹)가 22일 신주 10만주(주당 가격 50만원)를 인수했다’고 최근 공시했다. 알리안츠생명이 지난 16일 유상증자를 위해 주주배정 방식으로 발행한 신주 총 37만4,000주를 중 일부를 알리안츠그룹이 사들인 것이다.
이미 팔기로 한 회사에 유상증자를 통해 돈을 쏟아 붓는 것은 몹시 이례적인 일이다. 알리안츠그룹은 지난 4월 알리안츠생명을 300만달러(35억원)에 팔기로 안방보험과 매매계약을 체결해 안방보험은 8월부터 금융당국의 인허가 절차인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받고 있다. 앞서 자산 규모가 16조원이 넘는 알리안츠생명의 값이 35억원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헐값 매각’논란이 불거졌는데, 실은 헐값조차 받지 못하고 오히려 돈을 얹어주고 회사를 판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차라리 회사 문을 닫으면 추가로 돈을 넣을 필요가 없는데 알리안츠그룹이 손해 보는 장사를 하는 건 보험사의 자의적 해산(청산 전 법인격 소멸 절차)을 금지한 보험업법이 한 원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현행법상 보험사는 법인을 해산하려면 금융위원회의 인가를 받아야 한다. 주인 마음대로 회사를 없앨 수 없다는 의미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보험사 자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보험 가입자의 돈을 보호하기 위해 해산을 제한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인가를 받으려면 다른 보험사에 보험계약을 넘기는 등 보험계약자 보호절차를 밟아야 하는데, 저금리 장기화로 제 코가 석자인 다른 보험사들이 알리안츠생명의 고금리 보험 계약을 받아줄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 앞서 알리안츠그룹이 일본 시장에서 철수하면서 영업은 전혀 하지 않고 기존 보험계약만 유지하는 법인을 남겨둔 것도 유사한 규제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더구나 세계 70여개국에 진출한 글로벌 금융그룹인 알리안츠가 이런 절차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막무가내로 한국 시장에서 철수한다면 신뢰에 치명상을 입게 돼 다른 나라에서도 인허가 등에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그렇다고 알리안츠생명을 마냥 껴안고 있는 것은 더 부담이 된다. 유럽 보험사들은 한국의 건전성 규제보다 더 깐깐한 ‘솔벤시2’ 규제를 받고 있는데, 이 규제는 보험 부채를 원가가 아닌 시가로 평가한다. 알리안츠생명은 과거에 팔았던 고금리 계약 때문에 시가 평가를 하면 부채 규모가 크게 불어나는데, 알리안츠생명이 연결재무제표로 계속 묶여 있으면 알리안츠그룹의 건전성까지 나빠질 수밖에 없다.
이처럼 알리안츠그룹은 마음이 급한 반면 안방보험은 상대적으로 느긋한 입장이다. 이 때문에 안방보험이 좀 더 좋은 조건에 계약을 성사시키기 위해 시간을 끌고 있다는 뒷말도 나온다. 이와 관련, 보험업계 관계자는 “알리안츠그룹이 신주 발행 규모(1,870억원)보다 적은 돈(500억원)만 넣은 것은 안방보험이 인허가 절차 등을 지연하며 확실한 답을 주지 않고 있어서가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이성택기자 highn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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