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권 문제로 보존 쉽지 않아
우리나라 두번째 서양식 호텔 ‘스튜어드호텔’의 표지석이 인천 차이나타운에서 발견됐다. 수십년간 수풀 속에 방치된 이 표지석은 소유권 문제로 보존 방안을 찾기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인천시는 한 시민으로부터 제보를 받아 지난달 인천화교협회 회의청(중구 선린동 8) 앞마당에서 스튜어드호텔의 경계를 표시한 것으로 추정되는 표지석을 찾았다고 29일 밝혔다.
‘화상 이태지계(華商 怡泰地界)’라는 한자가 붉은색으로 새겨진 이 표지석은 발견 당시 수풀 사이에 가려져 있었고 뒤쪽이 손상된 상태였다. 스튜어드호텔은 중국인에게 ‘이태루(怡泰樓)’라고 불렸다. 스튜어드호텔은 우리나라 최초의 호텔인 대불호텔이 번창하자 맞은 편에 1888년쯤 건립된 것으로 알려졌다. 대불호텔은 선교사 아펜젤러가 1885년 머물렀다는 기록이 남아있는 곳이다.
만들어진 지 최소 100년이 넘은 것으로 추정되는 스튜어드호텔의 표지석이 지금은 중국식당이 들어선 원래 자리(선린동 5)에서 약 50m 떨어진 화교협회로 옮겨왔는지 알고 있는 사람은 없다. 다만 스튜어드호텔을 운영하던 중국인 양기당(梁綺堂)씨가 화교협회 2대 회장(1919∼1928)을 지낸 인연 때문에 표지석이 이곳으로 오게 된 것으로 보인다.
스튜어드호텔은 인천항 개항(1883년) 이후 주요 인사들이 숙소로 사용하면서 이름을 알린 것으로 전해진다. ‘한국과 그 이웃나라들(Korea and Her Neighborsㆍ1897)’의 저자 버드 비숍은 1894년 2월 이곳에 머문 뒤 “손님을 편안하게 하기 위해 호텔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고 있다. 중국인 구역의 중심가 끝에 자리했지만 일본인 거류지의 중심거리도 한눈에 내려다보였으므로 아주 생동감이 넘치는 위치였다”고 감상을 적었다. 1층은 잡화점, 2층은 호텔이었던 스튜어드호텔은 객실을 3개에서 8개로 증축할 만큼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경인철도 개통(1899년) 후 외국인들이 서울에 가기 전 하루를 묵을 필요가 없어지면서 경영난에 부딪혀 1940년대 문을 닫은 것으로 알려졌다.
시 관계자는 “인천화교역사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표지석을 제자리로 돌려 역사성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며 “다만 그 동안 표지석을 보관했던 화교협회에 소유권이 있어 (시가 나서서) 보존하는 방안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환직 기자 slamhj@hankk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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