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무수석 통해 보고받아
박근혜 대통령은 28일에도 침묵했다. 이날 새누리당 친박계마저 ‘명예로운 퇴진’을 건의하기로 의견을 모았지만, 아무런 메시지를 내지 않은 채 열흘째 모습을 감췄다.
청와대 참모들은 종일 내부 대책회의만 거듭했다.
청와대는 친박계 중진 의원들의 건의에 대해 한 동안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청와대와 친박계 의원들이 ‘명예 퇴진 시나리오’를 미리 짜두고 치밀하게 움직인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청와대 관계자는 “친박계 의원들까지 그런 제안을 하니 당혹스럽다”면서 “박 대통령은 정국 수습 방안을 종합적으로 고민하고 있지만, 당장 명예 퇴진을 적극적으로 고려하는 단계는 아닌 것으로 안다”고 선을 그었다. 27일 전직 국회의장ㆍ원로들이 “박 대통령이 내년 4월까지 물러나야 한다”고 요구한 것을 두고도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은 “여러 의견을 경청하고 있다”고만 했다.
청와대는 그간 박 대통령의 자발적 퇴진을 거부하며 “차라리 법대로 탄핵하라”는 태도를 취해 왔다. 박 대통령의 임기 단축을 전제로 한 ‘대통령 2선 후퇴 → 책임총리나 거국내각에 의한 비상 국정운영 → 차기 대통령 선출’의 시나리오가 헌법 정신에 어긋난다는 것이 청와대의 입장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박 대통령이 ‘질서 있는 퇴진’을 택해야 한다는 압박이 커질 것이다. 여권 인사는 “박 대통령이 ‘단정한 뒷모습’을 남기고 퇴장할 기회는 이미 놓쳤다”면서 “그렇다고 끝까지 버티면 탄핵과 사법처리 등 치욕스러운 결말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의 마지막 호위무사들이었던 친박계 의원들까지 명예로운 퇴진을 요구해 고립무원 처지에 놓인 것도 박 대통령의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친박계 의원들은 이날 허원제 청와대 정무수석을 통해 명예 퇴진 방안을 박 대통령에게 제안했고, 박 대통령은 거부도 수용도 하지 않은 채 “잘 알겠다”는 답변만 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가 이날 질서 있는 퇴진론을 즉각 반박하지 않은 것이 내부 기류 변화를 시사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박 대통령의 진심은 이르면 이번 주 중에 확인될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이 어떤 결심을 하든, 야당이 대통령 탄핵안 처리일로 잡은 12월 2일 또는 9일 전에 입장을 밝혀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탄핵 정국의 주도권을 쥔 야당이 박 대통령이 최소한의 품위를 지키며 퇴진할 수 있도록 협조할 것인지는 미지수다.
최문선 기자 moon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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