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으로 좋아했던 연예인은 가수 윤상이었다. 열일곱 살이었는지 열여덟 살이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성문영어 맨 앞장에다 잡지에서 오린 윤상의 사진을 붙여놓았다. 그 사람이 좋았던 마음보다 어쩌면 나에게도 좋아하는 연예인이 생겼다는 사실에 더 신이 났던 건지도 모르겠다. 서른서너 살에 처음으로 쿠쿠를 샀다. 순전히 예뻐서 샀던 하늘색 조그만 동양매직 전기밥솥이 고장 났기 때문이었다. 쿠쿠는 하나도 예쁘지 않은 데다 제일 작은 6인용도 내 조리대에 올려놓기에는 너무 컸다. 그런데 밥을 처음 해본 날 나는 깜짝 놀랐다. 두고두고 그날의 심정을 친구들 앞에서 떠들었다. “배신감이 어마어마했어. 사람들은 다 이렇게 찰지고 맛있는 밥을 먹고 있었던 거야. 나만 그걸 모르고.” 처음 전동드릴로 나사를 박던 날의 두근거림도 기억한다. 두두두둑, 힘도 안 들이고 의자 다리를 고치고 테이블을 만들었다. 놀라운 경험이었다. 무채를 썰어 들기름에 달달 볶아 무나물을 처음 만들었던 날도 기억하고 2,000원어치 돼지껍데기를 산 다음 잘 말려 강아지 간식을 처음 만들어주었던 날도 기억하고 재작년엔 우엉을 덖어 우엉차도 처음 만들었다. 아기 엄마가 된 것도 처음이다. 나는 중년도 처음이다.
그리고 어쩌면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생애에선 처음, 국민의 힘으로 사퇴시킨 대통령을 만나게 될는지도 모른다. ‘처음’과 그 ‘이전’은 내 경험상 몹시 달랐다. 겪게 된 그 ‘다음’이 늘 그전보다 나은 건 아니었지만 이번에도 내 ‘처음’을 좀 기대하고 있는 중이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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