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 최순실(60)씨와 딸 정유라(20)씨에게 78억원을 지원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실탄 부족’을 이유로 무산된 2020 도쿄올림픽 중장기 로드맵에 다시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로드맵 작성과 실행을 주도한 대한승마협회는 “정유라가 삼성의 지원을 받던 시기에 로드맵은 승마협회 회장사인 삼성의 재정 지원 부족으로 무산됐다”고 밝혔다.
대한승마협회 고위 관계자 A씨는 27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올해 초까지 회장사인 삼성 측에 로드맵 추진을 계속 요구했으나 ‘조금 기다려 달라’는 답만 돌아왔다”고 말했다. 대한승마협회는 지난해 6월 2020 도쿄올림픽 승마 3종목(장애물ㆍ마장마술ㆍ종합마술) 출전을 지원하기 위해 608억원이 소요되는 로드맵을 작성했다. 선수 1인당 마필 40억원과 전지훈련비 10억원이 소요되고, 종목당 4명씩 총 12명의 선수를 육성한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A씨에 따르면 삼성 측은 거듭 “투자 비용이 너무 많다”며 결정을 유보했다.
로드맵 계획이 삐걱거리던 시기 삼성의 지원금은 정씨 개인에게 흘러 들어갔다. 검찰과 삼성 측에 따르면 삼성은 지난해 9~10월 최씨 모녀 소유의 독일 법인 코레스포츠(현 비덱스포츠)와 280만유로(35억원) 지원 계약을 맺었고, 명마 구입비용으로 319만유로(43억원)을 추가로 투자했다.
승마협회는 삼성 측의 지원을 이끌어내기 위해 로드맵을 수정해 삼성의 부담을 낮추기도 했다. 마장마술은 삼성이 후원하되, 장애물이나 종합마술은 우수 선수를 보유하고 있는 마사회가 후원하고 박재홍 전 마사회 감독을 올림픽 준비단장으로 뽑는 ‘분산지원안’을 마련했다는 것이 A씨의 설명이다. 지난해 10월 삼성이 마장마술에 186억원을 지원하는 계획이 도출된 것은 이 때문이다. 삼성의 부담은 3분의 1 이하로 줄어든 격이지만 이조차 실행되지 못하고 엎어졌다. 박 감독은 최근 본보와 만나 “말 구입비 등 자금 집행이 제대로 되지 않아 지난 1월 중도 귀국했다”고 말했다.
승마협회가 삼성의 개별 지원을 눈치챈 것은 지난 2월이다. 삼성이 독일에서 10억원을 호가하는 명마 비타나V 등을 구입했다는 소식이 유럽 매체 등을 통해 알려지면서다. A씨는 “2004년 아테네올림픽 당시에도 삼성이 승마협회 회장사였지만 별도로 삼성 승마단을 후원했기 때문에 로드맵과 별개로 정씨를 지원한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결과적으로 승마협회 차원의 선수 육성은 정씨 외에 다른 선수들에게 기회도 주지 않은 채 물거품이 됐다. 한 승마계 관계자는 “도쿄올림픽은 아시아 경쟁자인 일본이 개최국이어서 출전권이 자동 부여되기 때문에 나머지 출전권을 노리는 한국 선수라면 모두 탐내는 대회”라고 말했다. 승마계를 육성할 수 있는 기회가 정씨에 대한 특혜 지원으로 어려워진 셈이다.
삼성전자 측은 “도쿄올림픽에 나갈 6명의 선수를 육성한다는 명목으로 삼성전자 독일 법인에 43억을 송금한 뒤 말을 구입했지만 정씨 한 명이 말을 이용한다는 것이 취지에 맞지 않아 자금을 모두 회수했다”고 해명했다.
이현주 기자 mem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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