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달 ‘위대한 낙서’ 展 참여
‘리퀴데이션 로고’ 등으로
상업주의ㆍ오리지낼러티 비틀어
“아파트 발코니 밖으로 그래피티 하는 사람들이 보였는데, 이상하게 관심이 갔어요.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 그들이 그림 그리는 모습을 제가 망원경으로 보고 있더라고요.”
그래피티(Graffitiㆍ건축물 벽면의 스프레이 그림)를 동경하며 발코니 벽에 그림을 그렸던 12살 소년이 자라 프랑스 스트리트 아트를 대표하는 작가가 됐다. 주인공인 제우스(39·본명 크리스토프 아기르 슈워즈)는 12월 9일부터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위대한 낙서(The Great Graffiti)’ 참여작가로 방한해 현재 경기 화성의 한 공장에서 작업 중이다.
제우스는 25일 한국일보와 만나 “아래에서 우리 집을 올려다 보니 우리집 발코니만 알록달록하더라고요. 그게 20년 넘도록 이어온 작업의 시작인 셈이죠”라고 말했다. 거리로 나간 제우스는 자주 이용했던 기차를 첫 번째 캔버스로 삼았다. “기차를 다시 만난 건 일주일쯤 지나서였어요. 도시를 누비다 저한테 돌아온 거죠, 마치 부메랑처럼요. 그때의 행복감은 정말 굉장했어요.”
그래피티를 예술로 승화시켰다는 평을 받기까지 제우스는 여섯 번 이름을 바꿨다. 처벌을 피하기 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고, 그 세계에선 흔한 일이었다. ‘제우스’라는 이름을 택한 건 운명이었다. “그래피티를 예술로 여기는 사람들이 별로 없더라고요, 낙서쯤으로만 치부하고 반달리즘이라 욕했죠. ‘작업을 계속 해야 하나’ 고민하며 터널에서 작업 중이었는데, 기차가 진입했고 저를 거의 칠 뻔했어요. ‘빵’ 하는 경적 소리와 함께 기차에 적혀있던 ‘제우스’라는 글자가 머릿속에 또렷하게 각인됐어요. 그때 결심했어요. ‘제우스라는 이름을 도시에 각인시켜야겠다’고.”
그가 거리의 작가 중에서 유명해진 것은 ‘역발상’ 때문이었다. “1990년대 말 도시 곳곳의 그래피티를 지우라는 지시가 있었어요. 미화원들이 고압 분사기로 그래피티들을 지우기 시작했죠. 문득 ‘왜 그래피티를 더러운 것으로 인식할까’ 하는 의문이 들더라고요. 편견을 깨고 싶었죠. 각종 때와 먼지로 뒤덮인 벽에 분사기를 이용해 그림을 그렸어요. 더러운 벽들이 그래피티 덕에 깨끗해진 거죠.”
샤넬, 맥도날드, 코카콜라 등 세계적 브랜드 로고가 흘러내리는 듯한 ‘리퀴데이션 로고(Liquidation Logos)’는 그의 대표작이자 발상의 전환을 보여주는 또다른 예다. “많은 현대인들이 거대 기업을 신처럼 여기는 것 같아요. 브랜드 로고를 작업에 이용해 상업주의를 비틀고 싶었어요. 물감이 흘러버린 로고는 더 이상 그들의 것이 아닌 거죠.”
‘LDV 프로젝트’도 그런 연장선상에 있다. “루이비통 로고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만든 ‘LDV’를 참고한 거에요. 오리지널(레오나르도 다빈치의 LDV)을 카피한 것(루이비통)을 다시 한번 카피했어요. ‘오리지낼러티’에 대해 의문을 던지는 겁니다.”
세계의 많은 미술관과 갤러리들이 앞다퉈 스트리트 아트를 소개하고 있지만 제우스는 그런 상황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고 강조했다. “스트리트 아트도 이제 정말 ‘아트’가 됐어요. 예술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서 뒤처지지도 않아야 하지만 또 너무 앞서서도 안 된다고 생각해요. 아주 ‘살짝’만 앞서 세상과 함께 돌아가야 한다고요.”
제우스의 작품을 포함해 세계적 작가 7인의 ‘낙서’ 예술을 선보이는 이번 전시는 예술의전당 서울서예박물관에서 내년 2월 26일까지 열린다.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