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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사전’ 그 남자의 신비한 매력 4

입력
2016.11.26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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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신비한 동물사전'.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영화 '신비한 동물사전'.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낯익으면서도 낯설다. 국내 소개된 출연작은 많은데 작은 영화 위주였다. 숱한 미남 배우 중에서 유난히 도드라질 얼굴도 아니다. 많이 본 얼굴인데 이름까지 명확히 기억할 수 없는 이유다. 25일까지 267만5,508명(영화진흥위원회 집계)을 모으며 초겨울 극장가를 흥행 열기로 데우고 있는 ‘신비한 동물사전’의 주연배우 에디 레드메인은 친숙하지 않은 듯 친숙한 배우다.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남우주연상을 이미 수상했고, 앞으로 더 많은 상을 받을 것으로 여겨지는 서른 네 살 이 배우는 아직도 진화 중이다. 예술영화에 주로 얼굴을 비추며 연기력을 발휘한 뒤 ‘신비한 동물사전’ 같은 블록버스터로도 영역을 확장 중이다. 그는 ‘신비한 동물사전’에서 어리숙한 표정으로 동물보호와 정의실현이라는 자신의 길을 꿋꿋이 걸어가는 뉴트 스캐맨더를 연기하며 ‘해리 포터’ 신화를 재현하고 있다. ‘신비한 동물사전’에 빠져든 관객이라면 레드메인과 좀 더 친숙해질 필요가 있다. 앞으로 적어도 2년에 한번씩 4차례 그의 모습과 마주해야 한다(‘신비한 동물사전’은 10년 동안 5편까지 만들어지기 때문). 레드메인의 인상 짙은 연기로 기억될 영화들을 통해 그의 매력을 돌아본다.

마릴린 먼로와 함께 한 일주일(2011)

영화 '마를린 먼로와 함께 한 일주일'.
영화 '마를린 먼로와 함께 한 일주일'.

제목대로 세기의 여배우 마릴린 먼로(미셸 윌리엄스)와 함께 일주일을 보낸 남자의 사연을 그렸다. 신의 은총과도 같은 인생의 순간을 보내게 된 남자 클라크(에디 레드메인)은 영국의 신참 조감독이다. 먼로가 1956년 ‘왕자와의 무희’라는 영화 촬영을 위해 영국을 찾으면서 두 사람의 인연은 시작된다. 먼로를 신처럼 바라보며 보좌하던 클라크는 세계적 배우가 겪는 고통을 조금씩 깨닫게 된다. 영국의 전설적인 배우 겸 감독 로렌스 올리비에(케네스 브래너)와 함께 촬영하면서 먼로는 자신을 옥죄고 있는 편견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먼로가 연기보다는 육체로 인정 받았다는 생각에 올리비에는 편견에 쌓인 의견을 내비치고, 먼로는 자괴감에 시달린다. 영국에 동행한 먼로의 남편이자 유명 극작가인 아서 밀러도 크게 다르지 않다. 먼로의 지적 능력을 폄하하며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먼로는 경외심으로 자신을 돕는 클라크에게 호감을 느끼며 의지를 하게 되고, 촬영장에서 벗어나 클라크와 일주일을 보낸다.

레드메인은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주근깨 얼굴’을 한껏 활용한다. 서른 남짓에 출연한 영화인데도 사회 초년생의 풋풋함을 스크린에 발산한다. 대스타 앞에서 조심스러우면서도 자신의 주장을 밝히며 순수청년의 면면을 보여준다. 자극적인 제목에 비하면 이야기 줄기는 단조롭다. 악센트 없는 이야기에 활기를 불어넣는 건 윌리엄스와 레드메인의 호연이다. 윌리엄스는 청순하고도 여린 마음을 지닌 먼로를 자신의 것으로 오롯이 소화하며 레드메인 연기와 절묘한 앙상블을 이룬다. 감독 사이먼 커티스.

레미제라블(2012)

영화 '레미제라블'. UPI 제공
영화 '레미제라블'. UPI 제공

레드메인의 얼굴을 널리 알린 영화다. 프랑스 문호 빅토르 위고의 동명 원작을 밑그림으로 만든 동명뮤지컬을 스크린으로 옮겼다. ‘오페라의 유령’과 ‘미스 사이공’, ‘캣츠’와 함께 세계 4대 뮤지컬로 꼽히는 뮤지컬이 지닌 생명력을 큰 훼손 없이 영화화했다는 평가를 받은 작품이다. 레드메인은 여주인공 코제트(어맨다 사이프리드), 에포닌(사맨다 바크스)과 삼각관계에 놓이는 혁명지도자로 마리우스를 연기했다. 열정적이면서도 남성미를 풍겨야 하는 배역인데 (적어도)국내에선 그런 매력을 지니지 못한 배우를 잘못 캐스팅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휴 잭맨과 러셀 크로우, 앤 해서웨이 등 화려한 출연진에다 빛나는 노래들에 그의 연기력이 가려지긴 하나 레드메인은 열혈청년의 모습을 기대 이상으로 해낸다. 감독 톰 후퍼.

사랑에 대한 모든 것(2014)

영화 '사랑에 대한 모든 것'. UPI 제공
영화 '사랑에 대한 모든 것'. UPI 제공

영국의 천재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의 젊은 시절을 영화화했다. 대학 시절 촉망 받는 물리학도였다가 파킨스씨병에 걸려 2년 시한부 인생을 선고 받은 호킹이 사랑의 힘으로 역경을 이겨내고 세계적인 물리학자로 거듭나는 과정을 그렸다. 레드메인은 호킹 역할을 맡아 조금씩 육체가 무너져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빼어난 재능에도 불구하고 젊은 나이에 사신과 맞서야 하는 호킹의 정신적 고통, 자신의 의지와 멀어지는 육체를 간신히 지탱하며 연구활동을 지속하는 호킹의 집념, 아내 제인 호킹(펠리시티 존스)과의 사랑과 경쟁 등을 다채로운 감정연기로 소화해낸다. 흐릿한 발음으로 의사전달을 하는 킹을 자연스럽게 표현해내는 레드메인의 모습은 다니엘 데이루이스의 연기(‘나의 왼발)’를 떠올리게 할 정도로 호소력 짙다. 레드메인은 이 영화로 2015년 아카데미영화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감독 제임스 마쉬.

대니쉬 걸(2015)

영화 '대니쉬 걸'. UPI 제공
영화 '대니쉬 걸'. UPI 제공

사랑하는 여자와 결혼을 했다. 자신을 남성으로 알고 살아왔던 남자는 처음엔 여자 옷에 탐닉하다가 곧 자신의 성정체성을 깨닫는다. 남성이라는 육체 속에 실은 여성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남자는 여자 옷으로 자신을 꾸미다 영구적인 여성을 꿈꾸게 된다. 외과수술이 지금보다 발달하지 않았던 20세기 초반 남자는 독일을 찾아 인류 최초로 성전환수술을 받는다. 하지만 수술후유증을 견디지 못하고 곧 세상을 떠난다. 레드메인은 남성 에이나르 베게너로 살다 여성 릴리 엘베로 숨진 한 기막힌 실화의 주인공을 연기하며 자신의 재능을 맘껏 발산한다. 여자 옷을 탐하는 별스러운 남자가 악세서리에 매료되는 수줍음 많은 여자로 변신하는 과정을 매끄럽게 그려낸다. 아내와 갈등하고 세상의 편견에 맞서면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꿋꿋이 찾아가는 주인공의 성정은 레드메인의 몸을 통해 구체성을 얻는다. 레드메인은 이 영화로 2016년 아카데미영화상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라 2년 연속 수상이 점쳐지기도 했으나 상을 손에 쥐지 못했다. 감독 톰 후퍼.

라제기 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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