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이 주축이 된 국민참여감사위원회를 만들어야 (정부를) 견제할 수 있습니다.”
26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시민평의회에 참석한 직장인 황재환(24)씨의 설명에 테이블에 앉아 있던 시민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날 박근혜정권 퇴진 5차 촛불집회를 앞두고 시민 150여명은 ‘광장의 분노, 시민 주권 어떻게 세울 것인가’라는 주제로 열띤 토론을 벌였다. 박 대통령 퇴진을 기정사실화하고 시민사회가 주도해 민주주의를 복원할 대안을 찾는 자리였다. 시민평의회는 참가자 모두가 동등한 발언권을 갖고 주제를 정해 가감 없이 의견을 밝히는 직접 민주주의를 본떴다.
사회를 맡은 최현모 인권재단사람 사무처장은 “하늘에서 하야 눈이 내린다”고 입을 뗀 뒤 ▦퇴진 거부 박근혜, 어떻게 퇴진시킬 것인가 ▦비상시국, 시민은 무엇을 할 것인가 ▦정부의 능력과 도덕성을 어떻게 견제할 것인가 등 3가지 세부 주제와 진행 방법을 소개했다. 곧 이어 우비를 입거나 우산을 든 시민들이 대여섯 명씩 테이블에 앉아 토론 주제를 선정하고 의견을 나눴다.
시민들은 ‘최순실 게이트’의 원인을 정부의 무능과 부패를 견제할 장치 부재에서 찾았다. 때문에 부도덕한 정권을 물러나게 하려면 시민들이 지속적으로 촛불을 들고 의견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 신정동에서 온 윤길숙(50ㆍ여)씨는 “그간 새누리당의 행태로 볼 때 탄핵소추안이 부결될 가능성이 크고 헌법재판소에 간다 해도 대부분 친정부 성향이라 어려울 수 있다”며 “박 대통령을 끌어 내리기 위해선 시민들이 매주 모여 하야를 외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경기 평택시에서 온 고3 학생 조모(18)군과 인천에서 온 이모(62ㆍ여)씨는 촛불의 지속성에 대해서는 동의하면서도 “지방에서 대규모 집회가 없어 서울까지 온 만큼 지역 단위에서도 시민들이 시국을 논의할 수 있는 토론의 장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장소현(40ㆍ여)씨도 “이제 직접 민주주의로 대정부 투쟁의 방향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전국적으로 시민평의회가 진행돼 곳곳에서 시민의견을 나누는 기회가 많아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견제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도 제시됐다. 최요섭(32)씨는 “국민들이 매일 모여 힘껏 외쳐도 소용이 없으니 국민소환제나 상시국민투표 등 언제든 국민들이 직접 투표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고, 중학생 김진우(15)군은 “최근 일어난 일련의 사태는 국가권력을 한 명이 독점하기 때문에 발생했다. 국가원수를 2명 이상 둔다면 서로 견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광장 앞에 설치된 전광판에는 “대통령이 물러나지 않으면 현 사태에 공동 책임이 있는 친박부터 몰아내야 한다” “계속 촛불을 들고 국민의 힘을 보여주니 검경도 동조해주고 있는 만큼 계속 나와 힘을 보여주는 방법뿐이다” 등 토론 도우미가 정리한 시민들의 목소리가 실시간으로 공개됐다.
두 시간 가량 토론을 이어간 시민들은 다양한 제언에 대해 투표로 우선순위를 정했다. 박 대통령 퇴진 방식으로는 ▦국회가 탄핵을 진행하고 헌법재판소가 거부하지 않도록 단체행동 지속(37%) ▦헌재를 믿을 수 없으니 국민투표 실시(27%) ▦제 역할을 상실한 국회를 대신해 시민들이 지속적으로 촛불 들고 일어날 것(25%) ▦검찰과 특검의 철저한 수사(11%) 등 안이 선정됐다.
시민 운동 방향은 ▦퇴진할 때까지 집회 지속(온라인 포함ㆍ37%) ▦전국적으로 진행되는 시민평의회(퇴진 후 방안도 함께 논의ㆍ27%) ▦집집마다 플래카드 걸기, 416추모리본처럼 리본달기 등 일상 속 실천(19%) 등을 꼽았다. 시민평의회 논의 과정과 결과는 페이스북(https://www.facebook.com/koreacouncil)에서 볼 수 있다.
곽주현 기자 z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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