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11월의 마지막은 외환위기가 휩쓴 대한민국의 치욕이자 혼돈의 시간이었다.
11월 21일, 강경식 부총리의 뒤를 이은 임창열 부총리 겸 재정경제원 장관은 임명된 지 이틀 만에 정부청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공식 요청했다. 연초 한보철강 부도에서 시작해 진로, 한신공영, 기아, 대농, 쌍방울이 차례로 무너지더니 11월 들어 해태와 뉴코아 그룹마저 부도 처리되면서 한국 사회는 끝없는 불황의 늪으로 빠져 들기 시작했다.
무섭게 오른 환율에 반비례해 주가는 끝없이 곤두박질쳤다. 1983년 도입된 종합주가지수는 94년 1138로 최고점을 찍은 후 96년까지 1000대를 오르내리며 약보합세를 유지했지만 97년 IMF체제에 들어서며 순식간에 700, 500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급기야 11월 28일에는 한때 심리적 저지선이었던 400을 밑돌아 금융계와 투자자에 큰 충격을 안겨 줬다.
사진기자들은 매일 카메라를 메고 명동 증권가를 찾았다. 명동 골목은 수많은 증권사의 객장이 몰려 있었고 당시에는 영업점 내부 취재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대유증권(현 골든브릿지투자증권) 객장이 인기가 좋았다. 순간순간 변하는 현황판과 투자자들, 그리고 커다란 숫자로 표기된 종합주가지수는 현장 상황을 한눈에 보여주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지금은 투자자들의 항의와 영업점 사정 등으로 증권사 객장에서는 사진을 찍을 수 없다. 언론에 나오는 주가지수는 서울 을지로 KEB하나은행의 딜링룸과 여의도 증권거래소의 모습 외에는 보기 힘들다. 2017년 오늘(11월 25일) 코스피 지수는 1974.46을 기록했다.
손용석 멀티미디어부장 st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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