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가 온통 최순실씨 국정 농단과 박근혜 대통령 퇴진ㆍ탄핵 관련 소식으로 뒤덮인 가운데 색다른 뉴스가 눈에 들어왔다. 23일 사망한 류미영(95) 북한 천도교청우당 중앙위원장의 차남 최 모(70)씨의 방북을 정부가 승인했다는 기사다. 통일부는 북측으로부터 모친 위독 연락을 받은 최씨가 방북을 신청해 이산가족상봉과 인도주의 차원에서 19일 승인했다고 밝혔다. 국제사회의 전면적 대북 제재 분위기 속에 지난 여름 두만강 유역의 심각한 수재에 대한 인도적 지원도 거부하던 정부여서 배경이 궁금해진다.
▦ 류 위원장은 2000년 8월 제1차 이산가족 방문단 교환 때 북측 단장으로 서울을 방문한 바 있어 우리에게 꽤 알려진 인사다. 상해 임시정부 국무위원 겸 참모총장을 지냈고 천도교도였던 독립운동가 류동렬의 외동딸이기도 하다. 1989년 평양서 사망한 남편 최덕신은 군 출신으로 박정희 정권에서 외무장관과 서독 대사를 지냈고 천도교 교령에도 올랐다. 그러나 군 후배였던 박정희와의 불화로 1976년 일본을 거쳐 미국에 망명, 반한 활동을 벌이다 1986년 아내와 함께 입북했다.
▦ 최덕신은 6ㆍ25 이후 월북 또는 입북한 남측 인사 중 최고위급이다. 월남한 인사 중 최고위 인사인 황장엽 전 노동당비서와 비견된다. 최덕신의 부친은 상해 임시정부 법무부장을 지낸 독립운동가 최동오다. 임시정부 정의부가 운영하던 2년제 군정학교 화성의숙 교장을 맡기도 했다. 이 때 김일성도 화성의숙 학생 중 한 명이었다. 최동오가 1948년 4월 평양에서 열린 남북연석회의에 남측 대표단 일원으로 참가했을 때 김일성은 옛 스승을 만났다며 집으로 모셔 극진히 대접했다고 한다.
▦ 둘 다 천도교도로 임정 시절 사돈을 맺었던 최동오와 류동렬은 6ㆍ25때 북측의 독립운동가 ‘모시기 공작’으로 월북해 활동하다 사망 후 애국열사릉에 묻혔다. 최덕신 부부의 입북은 이런 가족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이다. 이들의 입북과 북 체제에서의 활동은 지탄받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 상해 임시정부 활동과 독립운동, 그리고 해방과 분단을 거치며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던 이들의 기구한 가족사는 가슴을 아프게 한다. 류 위원장 사망을 계기로 한 정부의 인도적 방북 승인이 꽉 막힌 남북관계에 작은 숨통이라도 틔웠으면 좋겠다.
이계성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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