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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의 베이비토크, 거짓말의 전주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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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의 베이비토크, 거짓말의 전주곡?

입력
2016.11.25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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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박근혜 대통령이 '최순실 게이트'에 대해 사과하고 있다. 이 사과는 참이었을까. 고영권 기자 youngkoh@hankookilbo.com
지난 4일 박근혜 대통령이 '최순실 게이트'에 대해 사과하고 있다. 이 사과는 참이었을까. 고영권 기자 youngkoh@hankookilbo.com

한국인의 거짓말

김형희 지음

추수밭 발행ㆍ216쪽ㆍ1만3,800원

##워터게이트’의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1960년 존 F 케네디와의 대선에서 붙었을 때 팔짱을 낀 자세가 화제였다. 부통령을 두 번 지낸 노련한 닉슨이 케네디를 ‘명문가 풋내기 도련님’이라 깔보는 포즈 아니냐는 평이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가드를 잔뜩 올린 모양새라는 게 전문가들 평가였다. 넉넉하게 충분히 이길 수 있는 판세라는 평에도 1972년 대선 때 도청이란 무리수를 두면서 탄핵을 자초한 건, 닉슨의 이 불안감 때문이라는 얘기다.

##‘지퍼게이트’ 당시 빌 클린턴 대통령의 행동 중 가장 화제가 됐던 것은 대배심 증언 때 끊임없이 코와 입 주변을 매만지는 행동이었다. 유려한 연설로 32살에 주지사에 당선될 정도로 ‘입심’과 ‘말빨’이라면 거칠게 없는 그였다. 그런 사람조차 ‘삽입’을 경계 삼아 ‘부적절한 접촉’과 ‘성관계’간 법률적 차이에 대해 설명하려니 별 수 없었다. ‘거짓말하면 코 커지는 피노키오냐’는 조롱이 따라다녔다.

거짓말은 흔적을 남긴다. 평소에 쭉 생각해왔던 것이나 기억나는 것을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말하는 게 아니어서다. 다른 무언가를 지어내서 말해야 한다는 건 아무리 능숙한 거짓말쟁이라 해도 찰나의 불편함을 안긴다. 말을 꺼내놓기 전에 뭔가 다른 것을 억지로 짜내야 하는 불편함, 말을 꺼내놓은 뒤 사실과 다르게 말했다는 데서 오는 왠지 모를 불편함, 한번 거짓말을 한 이상 그 거짓말을 또 다시 합리화하기 위해 그럴 듯한 뭔가를 또 내놓아야 한다는 불편함 등이다. “인지적 편안함을 되찾기 위해 인간의 뇌가 얼마나 많은 거짓말을 만들어내는 지 알면 깜짝 놀랄 것”이라는 심리학자 레온 페스팅거의 말을 굳이 빌지 않아도 될 정도다. 이런 불편함을 무의식적으로 털어내기 위해 하는 것들이 바로 바디랭귀지다.

‘한국인의 거짓말’은 김형희 한국바디랭귀지연구소장이 거짓말할 때 나타나는 한국인의 바디랭귀지를 분석한 뒤 25가지 특징으로 정리한 책이다. 외국의 보디랭귀지 연구를 쭉 보니 아무래도 한국과는 잘 맞지 않았다. 개인주의와 자기 표현이 강한 서구 사람들은 어조, 표정, 동작이 때에 따라 다양하게 변하지만, 한국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어서다. 그래서 5년간 1,000여개의 거짓말 실험 영상, 1,300여개의 참말 실험 영상을 만들어 분석, 비교했다.

읽어나가다 보면 기분이 묘하다. 거짓말을 할 경우, 단답형에 가까울 정도로 말을 줄인다. 추가적인 질문을 불편해하거나 길게 말해야만 하는 자리는 의도적으로 피한다. 서구 사람들은 거짓말을 할 때 멋쩍은 듯 씨~익 웃는 거짓미소를 띄는 경우가 많은 반면, 한국사람들은 무표정한 경우가 많다. 때에 따라선 묘한 경멸조의 표정을 짓기도 한다. 또 상대의 눈을 바로 못 보는 서구와는 반대로, 우리의 경우 상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는 경우가 더 많았다. 말할 때는 입술을 떼는 소리인 ‘음~’ ‘씁~’ ‘쩝~’ ‘어~’도 유난히 많다. 눈동자 움직임이 불안하고, 응답이 늦고, 침묵이 많으며, 말실수가 잦다. 말을 끝낸 뒤 입술 먹기나 턱 힘으로 입을 꽉 다무는 동작도 많다.

이쯤이면 묘한 기분의 정체를 알아낼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떠올라서다. 박 대통령의 화법에 대한 비판, 그리고 비판을 넘어선 조롱은 숱하게 많지만 가장 대표적인 것은 비서실장을 지낸 전여옥 전 의원이 한 “베이비 토크”라는 말이다. 그간 숱한 정치인, 평론가, 기자들이 박 대통령의 한마디를 두고 숱한 해석 논쟁을 벌였지만, 전 전 의원은 그 말이 실제로는 별 내용 아님을 지적했다. 그런데 그 ‘베이비 토크’가 실은 거짓말의 징후였다면?

박 대통령은 말로 먹고 사는 정치인임에도 공개적인 자리에서 길게 말하는 경우가 매우 드물다. 회의 자리에서 준비된 자료를 낭독하는 것 빼곤 지난달 25일 1차 대국민사과, 지난 4일 2차 대국민사과가 있다. 그나마 길게 말한 것은 9분 정도인 2차 대국민사과였다. 지금 현재 진행되고 있는 검찰 수사와 2차 대국민사과 내용에는 현격한 차이가 있다. 김 소장의 강남 사무실을 찾았다.

-어떻게 거짓말 연구를 하게 됐나.

“직장 다니다 디스크가 왔다. 그 때 다른 치료와 함께 웃음치료를 받았는데 묘하게 효과가 있었다. 비언어커뮤니케이션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다. 해외 연구를 많이 봤는데 국내와 안 맞는 경우가 많아 추가적으로 연구하게 됐다. 기업체나 경찰 등에서 이런 저런 강연 요청이 오고 있고, 이에 응하고 있다. 어쨌든 이런 류의 실증 데이터를 꾸준히 수집한 경우는 제가 거의 처음일 것이다.”

-서구와 어떤 차이가 있나

“3인칭 단수를 많이 쓴다, 부정적 표현이 많다 등이 있는데 이건 우리에게 잘 맞지 않다. 대신 우리에겐 ‘의도적 통제’에 따른 부자연스러움이 더 많다. 다만, 거짓말의 단서가 많다는 건 그만큼 거짓말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지, 무조건 거짓말이라는 건 아니다.”

-의도적 통제는 어떤 대목들인가.

“분석해보고 싶을 때는 소리를 제거한 뒤 화면을 확대해서 표정에만 집중해야 한다. 아무리 정제된 사람이고 훈련받고 연습한 사람이라도 눈, 눈 주변 근육, 이마에는 단서가 드러난다. 입 주변, 입 모양도 그렇다. 주의깊에 봐야 할 대목은 그런 부분들이다.”

-실제로 거짓말을 잘 가려내나.

“여러 연구 결과를 보면 보통 사람은 참과 거짓을 50% 정도 가려낸다. 여성이 남성보다는 조금 더 높다. 잘 가려내는 사람은 정보기관 사람으로 60% 정도 넘어가고, 나도 그 수준 이상은 된다.”

-사실 제일 흥미 있는 건 권력이나 돈을 가진 이들에 대한 분석 아닌가.

“그런 측면도 있다. 거짓말이라 폭로하는 게 속시원하니까. 그러나 진실인데 거짓말로 오인 받는 경우도 중요하다. 경찰이나 군 정보 계열에서도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주제다. 이 책의 후속작으로 준비 중이다.”

‘최순실 게이트’ 덕에 이제 주요발표 때는 이 책을 들고 체크를 해봐야 할 듯 하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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