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대를 풍미한 한국 야구의 슈퍼스타 이병규(42ㆍLG)가 그라운드를 떠난다.
시즌 종료 후 거취를 놓고 고심하던 이병규는 구단의 보류선수 명단 제출 마감일을 하루 앞둔 24일 LG에 은퇴 의사를 밝히고 20년 현역 생활을 마감하기로 했다.
이병규는 한국 야구의 상징과 같은 존재였다. 프로 17시즌 통산 1,741경기에 출전해 타율 3할1푼1리(6,571타수), 2,043안타, 972타점, 161홈런, 992득점, 147도루의 족적을 남겼다. 단국대를 졸업하고 1997년 1차 지명으로 LG 유니폼을 입은 이병규는 첫 해 151안타로 이 부문 3위에 오르면서 신인왕을 차지해 대형 스타 탄생을 예고했다. 3년째인 1999년 당시 단일 시즌 최다안타 2위(192개)의 기록으로 안타왕에 오르며 ‘안타 제조기’로 부상했다. 2001년까지 최다 안타 3연패를 차지하는 등 본격적으로 안타 생산에 들어가 정상적인 출전 기회를 얻은 2013년까지(일본 진출 2007~09년 제외) 무릎 부상을 당한 2003년과 2013년(98개)을 제외하고 매 시즌 세 자릿수 안타를 기록했다.
LG에서 10년을 뛴 2006년 말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어 일본프로야구 주니치에 진출한 이병규는 2007년엔 주축 선수로 뛰며 재팬시리즈에 올라 지금 SK 감독인 트레이 힐만이 이끄는 니혼햄을 꺾고 LG에서 껴 보지 못한 우승 반지를 손에 넣었다. 3년 간의 일본 생활을 마치고 2010년 LG에 복귀한 이병규는 불혹의 나이인 2013년에 제2의 전성기를 열었다. 주장 완장을 차고 타율 3할4푼8리로 역대 최고령 타격왕에 오르며 11년 만의 포스트시즌 진출을 이끌었고, 그 해 7월5일 목동 넥센전에서는 최고령(만 38세8개월10일) 사이클링히트를, 7월10일 잠실 NC전에서는 10타석 연속 안타 신기록(7월 3일 잠실 한화전 세 번째 타석을 시작으로 7월 10일 NC전 손민한을 상대)을 작성했다.
2014년 5월6일 잠실 한화전에서는 역대 최소경기 2,000안타의 금자탑도 세웠다. 종전 양준혁이 1,803경기 만에 작성한 기록을 150경기 앞당긴 1,653경기만이었다. 한 팀에서만 기록한 최초의 2,000안타이기도 했다. 이 밖에도 그가 남긴 기록은 열거하기 힘들다. 타격왕 두 차례에 최다안타 타이틀을 4번 가져갔고, 1999년 기록한 잠실구장 최초의 ‘30홈런-30도루’는 아직도 후발 주자가 없다. 골든글러브 외야수 부문 최다 수상(6회)을 했고, 2011년엔 올스타전 MVP를 차지했다.
특히 원 바운드 볼을 때려 안타로 연결 짓는 이병규는 프로야구 역사상 최고의 테크니션으로 불렸다. 2002년 LG를 이끌었던 김성근 한화 감독은 “우리 나라에서 유일하게 4할을 칠 수 있는 선수”라고 극찬했다. 이병규가 한국 야구의 아이콘으로 평가 받는 건 근 10년간 국가대표 터줏대감으로 활약하며 ‘국제용’으로도 명성을 떨쳤기 때문이다. 프로 2년차인 1998년 첫 드림팀이 출전한 방콕 아시안게임에서 홈런 4개를 포함해 12타점을 올려 금메달의 주역이 됐고,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는 외야 전 포지션을 오가며 13안타, 도루 4개로 인상적인 활약을 펼쳐 메이저리그 스카우터들의 표적이 되기도 했다.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에서도 타율 3할6푼4리로 금메달에 앞장섰다.
그러나 이병규는 2013년 말 3년 FA 계약을 맺은 직후 양상문 감독이 시즌 도중 부임한 2014년부터 급격하게 입지가 좁아졌고, 올 시즌엔 생애 첫 2군 캠프로 시작해 내내 퓨처스리그에 머물다가 시즌 최종전 단 1경기, 1타석만 소화했다. 퓨처스리그에서도 이병규는 4할 타율(0.401)로 건재한 모습을 보여 형평성 논란이 끊임없이 제기됐으나 양 감독의 방침은 변하지 않았다. 결국 지난달 8일 두산과 마지막 경기에서 더스틴 니퍼트를 상대로 친 2,043개째 안타가 이병규의 현역 마지막 안타가 됐다.
이병규는 25일 잠실구장에서 은퇴 기자회견을 열고 “홀가분한 마음도 들지만 아쉬움이나 서운함이 더 많이 남는다”며 “일본에 갔다가 한국으로 돌아오면서 ‘후배들에게 밀리면 무조건 옷을 벗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밝혔다. 이어 “솔직히 지금도 후배들과 경쟁은 자신 있다”면서 “한번만 (1군에서 뛸) 기회를 주면 열심히 뛰어보겠다는 생각에 미련을 쉽게 버리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성환희기자 hhs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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