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탄력 수업 블록타임제
45분 단위 기존 수업시간을
매주 4번 90분 수업 가능케
집중력 좋아지고 질문 살아나
2.태블릿PC로 가야금 연주
스튜디오ㆍ온돌방 등 혁신 환경
1인당 1대 소품 제작 장비까지
“인테리어 디자이너 장래 체험”
3.획일성 탈피 학생들 대만족
호주 배우는 사회 수업시간엔
호주 학생들과 직접 화상대화
“미래학교 모습 계속 고민 중”
“그냥 배추가 아니에요. 1학년이 키운 배추들이죠.” 지난 14일 오후 서울 중구 정동길 창덕여중 1층 ‘먹방’(가사 실습실)은 앞치마 두르고 비닐장갑을 낀 3학년 학생들로 분주했다. 탁자마다 삼삼오오 모여 커다란 스테인리스 그릇에 담긴 절인 배추들을 붉게 양념하거나 다된 김치를 칼로 썰어 다른 그릇에 옮기고 있었다. 박경빈양은 “처음이라 서툴지만 노인복지원에 기증한다”며 “1, 3학년이 합심한 결과여서 더 뜻 깊다”고 말했다.
이날 김장은 3학년 가정 과목의 요리 실습 수업이었지만, 과학 시간에 학생들이 배운 발효ㆍ삼투압 같은 과학적 원리들도 김장 과정에서 환기됐다. 가정 교과 담당 송주진 교사는 “배추를 절이고 재료를 손질하고 양념을 만드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요리 속에 숨은 과학적 개념을 더 잘 이해하게 하려는 취지의 가정ㆍ과학 연계 융합수업”이라며 “1학년생들이 교내 텃밭에 심고 수확한 무와 배추를 재료로 써 학생들의 몰입도가 높았다”고 말했다.
75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창덕여중이 교과별 스마트교실과 디지털학습 시스템을 갖춘 ‘미래 학교’로 거듭나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이 미래형 학습모델을 구축할 목적으로 2014년 창덕여중을 ‘서울미래학교’로 선정해 정보통신기술(ICT)이 활용된 첨단 기자재를 보급하고 다양한 수업 방식도 시도할 수 있게 도우면서다. 김윤경 시교육청 교육혁신과 장학관은 “한 학년 70명 안팎의 작은 규모가 실험하기에는 적절한 환경이었다”고 설명했다.
14일은 창덕여중이 2년 동안 거둔 성과를 소개하는 날이었다. 교육청은 창덕여중이 낡은 시설을 손질해 교과별로 스마트교실을 구축하고, 전 학생이 태블릿PC 등 스마트기기를 갖출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날 ‘서울미래학교 여는 날’ 행사에선 창덕여중이 그간 만든 수업 모형이 조희연 서울시교육감과 다른 학교 교사들 앞에서 시연됐다. 새로운 시설, 디지털 장비가 쓰였다. 조 교육감은 “창덕여중만 이렇게 좋아도 되냐”고 감탄했다.
학교 변화의 핵심은 수업 방식의 변화다. 이화성 창덕여중 교장은 ‘블록타임제’(45분 단위인 기존 수업시간을 탄력적으로 운영, 90분 수업이 가능하게 하는 제도)를 수업 변화의 토대로 꼽았다. 현재 창덕여중에서는 학급별로 주당 4번의 블록타임 수업이 이뤄지고 있다. 김장 실습도 오후 1시55분부터 3시25분까지 이어진 블록타임 수업이었다. “90분 블록타임 덕에 학생들의 집중력이 좋아지고 수업 때 질문이 살아나고 있다”고 이화성 교장은 평했다.
올해 전 학년에 ‘짝토론’ 과목을 신설한 건 학습을 위한 학습, 즉 메타 학습이 필요하다고 판단해서다. 중요한 건 질문이다. 예를 들어 1학년 짝토론 활동의 흐름은 이렇다. 사진을 보고 다양한 질문을 만들어본다. 자기 질문이 열린 질문인지 닫힌 질문인지 구분해본다. 짝을 바꿔가며 문답을 주고 받은 뒤 자기의 최고 질문을 뽑는다. 각 개인이 선정한 질문 위주로 모둠 토론을 진행해 모둠 최고 질문을 뽑고, 같은 식으로 학급 최고 질문도 뽑는다.
물리적 학습환경 조성은 이런 혁신적 수업이 원활히 이뤄지게 여건을 만들어 주기 위해서였다. 이날 2층 ‘공방’(기술 실습실)에서 모형 소품 제작 실습 수업을 진행한 기술 담당 이종제 교사는 “유니맷(소형 톱이 상하로 이동하며 얇은 목재를 직선ㆍ곡선 형태로 잘라주는 공작기계)이 1인당 1대씩 구비돼 있어 학생들이 충분히 목공 체험을 할 수 있다”고 자랑했다. 2학년 구수빈양은 “꿈이 인테리어 디자이너인 만큼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음악 수업에서도 시설ㆍ장비의 위력이 드러났다. 방음이 철저한 2층 스튜디오에 실제 가야금은 두 대뿐이지만 학생 전부가 제가끔 가야금을 연주할 수 있었다. 태블릿PC 덕이다. 음악 담당 강승희 교사는 “실제 악기 사이즈와 소리를 비슷하게 구현할 수 있는 태블릿PC용 국악기 어플리케이션이 있어 학생들이 음 자리와 연주법을 익히는 데 도움을 받았다”며 “국악기를 접할 기회가 거의 없는 현실을 스마트기기 환경이 개선한 셈”이라고 말했다.
대학처럼 학생들이 교과 교실로 이동해 수업하는 창덕여중의 경우 교실마다 교과 특성이 반영돼 있다. 컴퓨터실은 한쪽 벽면에 스크린이 설치돼 있고 학생 20명이 원형탁자에 둘러 앉을 수 있어 화상수업이 가능한 구조다. 실제 이곳에선 호주나 베트남, 미국 등 해외 학교와의 화상수업이 진행되기도 했다. 예컨대 호주의 자연ㆍ인문 환경을 다루는 사회 수업시간에 화면을 통해 호주 학생들과 대화를 나누는 식이다. 영어 교사가 소통을 보조했다.
이밖에 조명과 방송기기, 음향 등 관련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 뮤지컬 수업이 언제나 가능한 소극장과 온돌마루, 대형 거울이 구비돼 발레와 방송댄스, 무용, 필라테스 같은 수업에 쓰이는 온돌방 등도 창덕여중의 특징적 공간이다. 각 층 가운데 복도에는 ‘홈 베이스’가 설치돼 있는데, 학생들의 쉼터다. 교실이나 사물함이 놓여 있던 공간을 없애고 한쪽 벽면에 책장과 온돌마루를 만들었다. 피아노와 운동 기구도 있고 아늑한 분위기가 연출된다.
학생들이 가장 만족하는 대목은 획일성 탈피다. 2학년 정다소양은 “교과서만이 아닌 다양한 활동을 통해 수업을 할 수 있다”고 말했고, 같은 학년 김민주양은 “스튜디오, 온돌방, 홈 베이스 등 다양한 환경이 구축돼 있어 좋다”고 흡족해했다. 1학년 이현서양은 “다양한 활동 덕에 학생들 끼와 적성을 더 잘 찾을 수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이화성 교장은 “19세기 학교와 20세기 교사, 21세기 학생들이 공존하는 현실에서 그 간극을 어떻게 줄일 수 있는지가 미래 학교 논의의 기초”라며 “과학기술적으로 첨단인 학교는 물론, 안전하고 즐거운 학교, 민주적인 학교, 생태지향적 학교, 지역사회와 연결되는 학교 등 다양한 가치가 혼재하는 논의를 통해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을 만들어갈지 계속 고민할 것”이라고 말했다.
글ㆍ사진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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