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 남녀 41명 혈액 유전 정보
기존 정보 융합 “표준 지도 완성”
지난달 서울대 연구진도
남성 1명 심층분석 완성한 지도
네이처 통해 “표준”으로 발표
“국가 차원서 제작해야” 목소리
한국인의 유전적 특성을 대표하는 ‘표준 유전체(게놈ㆍ유전자 전체) 지도’가 한달 여 차이로 잇따라 발표되며 바이오 업계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하루 빨리 국가 차원의 표준이 마련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울산과학기술원(UNIST) 게놈연구소는 24일 한국인 표준 유전체 지도 ‘코레프’(KOREF)를 공개했다. UNIST가 이날 국제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를 통해 공개한 지도는 20~69세 성인 남녀 41명의 혈액에서 얻은 유전 정보를 그 동안의 한국인 유전정보와 합쳐 만든 것이다. 연구를 주도한 박종화 UNIST 게놈연구소장은 “겹치는 부분은 융합하고 한국인 고유의 특징은 더 잘 드러나도록 정리해 코레프를 완성했다”며 “우리나라 인구 집단을 대표하는 첫 표준 유전체 지도”라고 소개했다. 연구소는 특히 이번에 얻은 유전정보를 미국 백인 유전체 데이터와 비교, 한국인의 유전자 돌연변이 특성 등을 분석했다. 박 소장은 “코레프는 향후 우리 국민의 건강 증진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림 1울산과학기술원(UNIST) 게놈연구소가 제작한 한국인 유전체 지도의 일부. 유전자를 구성하는 화학물질인 염기 4가지가 알파벳(A, T, G, C)으로 빼곡히 나열돼 있다. UNIST 제공
/그림 2울산과학기술원(UNIST) 게놈연구소의 한국인 유전체 지도 제작 과정에 유전정보를 제공한 41명의 출신 지역 분포(초록색 점). ‘한국인 유전체 지도’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한반도 지도 모양에 유전자를 구성하는 화학물질인 염기 4가지를 상징하는 알파벳(A, T, G, C)을 그려 넣었다. UNIST 제공
그러나 서울대 의대 유전체의학연구소와 생명공학기업 마크로젠 공동 연구진도 지난달 한국인 표준 유전체 지도를 발표한 바 있다. 서울대 연구진이 ‘네이처’(10월 6일자)를 통해 발표한 또 다른 한국인 표준 유전체 지도는 30대 한국인 남성 1명의 유전체를 심층 분석해 기존에 알려져 있던 유전정보에서 기술적 한계 때문에 공백으로 남아 있던 부분을 채워 넣는 방식으로 완성됐다. 이 연구를 주도한 서정선 서울대 의대 유전체의학연구소장은 당시 “한국인을 대표하는 가장 완벽에 가까운 유전체 지도”라고 설명했다.
인간 유전체 지도는 3만여개에 달하는 사람 유전자 정보 전체를 모아 놓은 데이터를 뜻한다. UNIST와 서울대가 내놓은 지도 모두 한국인 유전정보를 집중 분석했다는 점에서 적잖은 의미가 있다. 지금까지 과학자들은 주로 미국의 표준 유전체 정보를 활용해온 탓에 한국인에 적합한 신약 개발이나 질병 연구, 바이오 산업 발전 등에 한계가 있었다. 한국인 표준 유전체 지도가 필요한 이유다.
문제는 어떤 지도를 ‘표준’으로 삼느냐다. 학계와 산업계엔 표준 유전체 지도에 대한 기준이 없다. 서 소장은 “최신 분석 기술과 대규모 컴퓨팅 파워를 사용한 우리 지도가 표준”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러나 박 소장은 “여러 한국인의 유전정보를 담아 국가참조표준센터에 등록 절차를 밟고 있는 우리 지도가 표준”이라는 입장이다.
한국인 유전체 지도를 둘러싼 논란은 지난 2008년에도 불거졌다. 당시 가천의과학대 이길여암당뇨연구원과 서울대 의대 유전체의학연구소는 서로 한국인 유전체 지도를 처음 완성했다고 주장했다.
과학자들은 ‘표준’이라는 용어 사용에 신중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생명과학 분야의 한 교수는 “양쪽 데이터 모두 한국인의 대표성을 학계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받지 못한 만큼 ‘표준’이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며 “표준 유전체 지도는 개별 연구자가 아닌 국가 차원에서 제작해야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바이오 업계 관계자도 “국가 차원에서 표준이 마련돼야 관련 산업도 발전도 빨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임소형 기자 precar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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