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공범 지목 도의적 책임”
김현웅 법무ㆍ최재경 민정 사의
‘탄핵 방어’ 박 대통령 구상 허물어져
당정청 시스템 모두 크게 동요
야권 내각 총사퇴 압박도 거세
비선실세 최순실(60)씨의 국정농단 행태가 본격적으로 드러난 지 한달 만에 박근혜 정권의 내부 붕괴가 시작됐다. 김현웅 법무부 장관과 최재경 청와대 민정수석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명한 사실이 23일 알려지자 청와대와 정부, 여당은 충격에 휩싸였다. 또 김무성 새누리당 전 대표가 박 대통령 탄핵을 주도하겠다고 나서면서 정권의 3각 축인 당ㆍ정ㆍ청이 모두 사납게 흔들리고 있다. 박 대통령의 ‘결단’을 요구하는 극심한 국정 위기 상황이 전개되고 있지만, 청와대와 정부, 새누리당 친박계는 껍데기만 남은 권력을 부여잡은 채 버티고 있다.
김 장관은 검찰의 최순실 게이트 중간 수사결과 발표 다음날인 21일 사표를 제출했다고 법무부가 공개했다. 최 수석은 22일 사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통령은 두 사람의 사표를 수리하지 않는 쪽에 무게를 싣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검찰이 박근혜 대통령을 최씨의 공범으로 지목하고 피의자로 입건한 것에 도의적 책임을 지겠다는 것이 김 장관과 최 수석의 생각인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두 사람이 정권을 ‘버리고’ 떠나려는 게 아니라는 설명이다. 김 장관은 법무부를 통해 “지금 상황에서 사의를 표명하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했다”는 입장을 내놓았고, 최 수석도 언론 인터뷰에서 “청와대가 불타는 수레라서 사의를 표한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나 사의를 밝힌 진짜 배경이 무엇이든, 김 장관과 최 수석의 행보는 정권이 내부에서 급속도로 허물어지기 시작했다는 신호로 해석됐다. 정부 권력기관의 대표로서 검찰총장 지휘권한을 가진 법무부 장관과, 대통령의 법무 참모이자 민심 전달 창구인 민정수석이 동시에 사표를 낸 것 자체가 초유의 일이다. 또 최순실 게이트로 박 대통령이 궁지에 몰린 이후, 국무총리ㆍ장관 등 국무위원들 중에 “책임”을 거론하며 자진 사퇴를 선언한 것도 처음이다. 최 수석을 중심으로 청와대 참모진의 전열을 가다듬어 특검과 탄핵 정국에 대비하려던 박 대통령의 구상도 허물어졌다. 최 수석은 지난 달 30일 임명된 지 약 20일만에 사표를 던졌다.
이에 따라 공직사회의 동요는 극심해졌고, 야권의 내각 총사퇴 압박도 거세지고 있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는 이날 숙명여대서 가진 ‘시국대화’에서 “국무총리와 장관들이 촛불 민심을 겸허히 받아들인다면 박 대통령에게 사임하겠다고 요구하고, 수용되지 않으면 집단사퇴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새누리당의 ‘반(反) 박근혜 행보’도 빨라지고 있다. 김무성 전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내년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박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야당과의 ‘탄핵 동맹’을 주도하겠다는 그의 선언이 당내 탄핵 여론에 불을 지피면서, 박 대통령이 다음 달 탄핵돼 직무정지 상태에 빠질 가능성이 한층 커졌다. 여당 의원의 상당수는 이미 청와대에 등을 돌렸다. 정두언 정태근 정문헌 김정권 김동성 박준선 이성권 김상민 전 의원 등 8명은 새누리당 해체를 요구하며 탈당했다. 전날 남경필 경기지사와 김용태 의원에 이은 2차 탈당이다.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는 기자간담회를 열어 다음 달까지 대표직을 지키겠다고 버텼지만, 여당의 분열을 수습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최문선 기자 moon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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