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부회장, 주총 10일 전
기금운용본부장과 비밀 회동
국민연금은 작년 7월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간 합병 성사의 ‘일등공신’이었다. 당시 미국계 헤지펀드인 엘리엇매니지먼트 등 외국인 투자자와 소액주주들이 합병 반대 의사를 밝힌 상황에서 삼성물산 대주주(11.2%)였던 국민연금은 ‘캐스팅 보트’를 쥐고 있었다. 국민연금마저 반대표를 행사하는 경우 합병은 물거품이 될 수밖에 없었던 상황. 그런데, 국민연금은 뻔히 손실이 예상되는 합병조건에도 불구하고 찬성표를 던졌다. 그 덕에 지난해 7월 17일 열린 삼성물산 주총에서 출석 주주의 찬성률은 69.5%로 가결 조건인 3분의 2(66.7%)를 간신히 넘길 수 있었다.
논란의 핵심은 삼성측이 정한 제일모직과 삼성물산간 1대 0.35의 합병비율이다. 삼성물산 주식 1주를 가진 주주는 통합 삼성물산의 주식 0.35주를 받게 되는 것인데, 제일모직 지분이 많은 이재용 부회장 등 총수일가에게 상당히 유리할 수밖에 없다. 반면, 국민연금은 삼성물산 지분을 제일모직(4.8%)에 비해 두 배 이상 보유하고 있어 이런 합병비율을 인정하면 손해를 보는 게 당연했다. 국민연금이 자체 산출한 적정 합병비율 또한 1대 0.46이었다. 그러나 국민연금은 “합병을 통해 2조원 이상 시너지가 가능하다”는 불분명한 전망을 근거로 합병에 찬성했다.
절차상으로도 의혹이 상당하다. 국민연금은 당시 민감한 사안은 외부 전문위원으로 꾸려진 ‘의결권 전문행사위원회’ 에 넘기는 관례를 깨고, 주총 1주일 전 내부 ‘투자위원회’를 개최해 찬성 방침을 정했다. 불과 한달 전 전문위를 거쳐 합병반대 결론을 낸 SK와 SK C&C 건과는 전혀 다른 행보였다. SK 합병 건에 반대한 전문위가 삼성물산 합병에도 제동을 걸 공산이 크자, ‘윗선’의 압력을 받은 국민연금이 내부 인사로 구성된 투자위에서 찬성 결정을 내린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이 부회장의 행보 역시 석연찮다. 투자위 개최 사흘 전 홍완선 당시 기금운용본부장과 비밀리에 만났고, 합병안이 주주총회를 통과한 지 1주일 뒤인 7월24일에는 박근혜 대통령과 독대했다. 삼성이 최순실씨 개인 회사인 독일 비덱스포츠에 35억원을 송금하고, 미르ㆍK스포츠재단에 204억원의 자금을 댄 건 그 이후였다.
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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