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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미국이 궁금하다면

입력
2016.11.23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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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인 더 다크'. UPI 제공
'맨 인 더 다크'. UPI 제공

하늘 위에서 내려다 본 마을은 집들로 가득하다. 도로를 제외하면 모두 집으로 보일 정도다. 뛰어 노는 아이들의 재잘거림과 나무담장을 사이에 둔 이웃들의 담소가 무성하게 들릴 듯하다. 카메라가 지상에 가까워지면 고개가 갸웃해진다. 대낮인데 다니는 차는 없고 사람들도 보이지 않는다. 지독한 역병이라도 한 차례 쓸고 간 듯한 서늘한 분위기. 한 나이든 남성이 기절한 젊은 여자의 머리채를 잡고선 끌고 간다. 낡은 도로에 붉은 피가 굵은 선을 그린다. 태양이 내려다 보는 주택가에서 벌어지는 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지난달 개봉해 100만3,405명이 본 할리우드 공포영화 ‘맨 인 더 다크’의 도입부는 을씨년스러운 풍경을 배경으로 큰 의문부호를 띄운다.

‘맨 인 더 다크’는 2014년 개봉한 예술영화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를 떠올리게 한다. 퇴락한 빈 집들이 늘어서 있는 공허한 도시의 밤길을 오래된 자동차로 떠도는 주인공들의 모습이 쓸쓸하다. 유령이나 살 법한 시공간을 주유하는 인물들은 뱀파이어다.

두 영화의 공간적 배경은 같다. 미국 미시간 주 디트로이트다. 미국의 자동차 생산 중심지였던 이곳은 급격한 인구 감소를 겪었다. 자동차 산업의 활황을 등에 업고 도시는 외곽으로 팽창하다가 불황을 겪으며 급속히 쭈그러들었다. 1950년대 인구 180만명이었던 미국 10대 대도시는 67만명(2015년 추정)의 중급 규모 도시가 됐다. 인적을 찾기 힘든 ‘유령 도시’의 풍광을 가지게 된 이유다.

‘맨 인 더 다크’의 인물들은 경제적으로 불우하다. 강도가 되기엔 심약하고 범죄를 저지르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좀도둑 10대 청소년들이 중심에 선다. 교통사고로 죽은 딸의 보상비를 집 안에 꼭꼭 숨겨둔 이라크 참전용사 출신 눈먼 노인의 집을 목표로 삼으면서 좀도둑들은 참극과 마주한다. 특수부대 출신이 분명한 맹인은 유난히 발달한 청각과 후각을 활용해 어둠 속에서 청소년들을 공격한다. 관객은 시간이 흐를수록 좀도둑의 무사생환을 응원하게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빠진다. 절도 피해자인 맹인의 숨겨진 악행은 선악의 위치를 바꾼다. 총성이 울려도 아무도 도와줄 수 없는 주택가의 모습은 불황으로 정글이 되어버린 조락한 도시를 상징한다.

‘맨 인 더 다크’가 폭력으로 서스펜스를 빚어내며 디트로이트의 불우를 묘사한다면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는 수 백 년을 고독의 무덤 속에서 보낸 뱀파이어를 붓 삼아 도시의 황폐를 세묘한다.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 찬란 제공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 찬란 제공

‘맨 인 더 다크’의 주인공은 맹인의 공격에서 겨우 살아남은 뒤 ‘약속의 땅’ 캘리포니아로 향한다.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의 뱀파이어들은 자신들의 존재가 발각될 위험에 처한 뒤 모로코 탕헤르로 거처를 옮긴다. 두 영화에서 디트로이트는 그렇게 더 이상 살 수 없는 공간으로 표현된다.

별 연관성이 없는 듯한 두 영화를 새삼 소환해 디트로이트를 언급하는 건 최근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의 승리로 끝난 미국 대통령 선거 때문이다. 디트로이트는 미국의 대표적 공업지대였다가 제조업 쇠퇴로 쇠락한 지역인 일명 ‘러스트벨트’(Rust Belt)의 주요 도시 중 하나다. 대선 격전지던 이곳에서 트럼프가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를 누르고 표심을 얻어 백악관으로 향하게 됐다.

‘맨 인 더 다크’의 눈먼 노인은 종족 번식에 매달리는 폭력적 가부장이다. 근육과 총기를 앞세운 그로 인해 청소년들은 죽음을 당하거나 고향을 떠나게 된다.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는 뱀파이어를 통해 다른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세상에 비판적 은유를 던진다. 더 이상 흡혈을 하지 않는데도 뱀파이어들은 사람들에게 박멸해야 할 대상이다. 낡은 가치가 존중 받고 다양성은 받아들여지지 않는 미국 사회의 도래를 두 영화는 예견하고 있는지 모른다.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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