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빌딩들은 대단히 크고 아름답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사람들을 마치 개미처럼 작은 존재로 만들죠. 저는 작품을 통해 건물과 사람을 연결하고 싶었어요. 관람객이 저의 작품 안에서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고 또 보호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길 바랍니다.”
스페인 출신의 세계적인 공공미술 작가 하우메 플렌자(61)는 23일 완공을 앞둔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 광장에 들어선 자신의 작품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한글 자모와 단어을 모티프로 삼은 이 작품 제막식을 하루 앞두고 기자들과 만난 플렌자는 “롯데월드타워와 작품이 조화를 이루는 건 당연하다”면서도 “그러나 작품을 제작하면서 건물에 포커스를 둔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플렌자는 “작품마다 설치 장소의 특성을 반영하기 때문에 다를 수는 있다”며 “그러나 결국 모두 내 작품”이라고 말했다. 공공미술 작가답게 그는 자신의 작업을 통해 담아내고자 하는 “아름다움”의 핵심을 “휴식”이라고 설명했다. 그래서 창작자로서 그가 가장 바라는 것도 “관람객이 작품 속에서 휴식할 수 있는 것”이다.
플렌자는 그동안 주로 영어 알파벳으로 작품을 만들어 왔다. 한글을 사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또 지금까지는 표의문자인 한자를 제외하고는 주로 글자들의 형태적인 결합에만 초점을 두었으나, 이번 작품에서는 구체적인 단어를 작품에 구현함으로써 단어가 지닌 의미와 가치를 전달하고자 주력했다. 보편적 가치를 지닌 단어(사람ㆍ사랑ㆍ평화ㆍ진리ㆍ참), 환경과 자연을 상징하는 단어(하늘ㆍ꽃ㆍ뫼ㆍ바람ㆍ별ㆍ달), 관계와 목표를 표현하는 단어(벗ㆍ으뜸ㆍ꿈ㆍ하나) 등을 작품에 담았다. 이 단어들은 모여 웅크린 사람 형상으로 거듭난다.
작품은 롯데월드타워 바로 옆이면서 개방형 구조로 사람들이 드나들기도 좋은 곳에 자리잡았다. 플렌자는 “삶에는 다양한 측면이 있다”는 뜻을 담아 작품에 ‘가능성(Possibilities)’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언어가 다르고, 문화가 달라도 ‘감정’은 공유할 수 있다”는 그는 이 작품이 비록 서울에 설치됐고 한글을 사용했지만 한국인만이 아니라 방문자라면 세계의 누구나 작품 안에서 누구나 여유와 휴식을 누렸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전했다.
“공공장소에 작품을 설치하는 것은 더 많은 책임감을 필요로 합니다. 나 홀로 작업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공간에 설치되는 것이기 때문이죠.” 플렌자는 이어 “‘공공미술’보다는 ‘공공장소에서의 예술’이라는 말이 적합하다”며 이 작품들이 “(공공장소를 찾는)사람들에게 생각을 끌어내는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내비쳤다.
2014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러버덕 이후 굵직한 공공미술프로젝트를 이어오고 있는 롯데그룹은 플렌자 하우메의 신작을 약 30억원에 사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외에 다른 국내외 작가들의 작품까지 포함하면 롯데월드타워 안팎의 미술작품 구성 비용은 약 50억원 규모로 추정된다.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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