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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응원하는 '응팔' 가수 이정석 "나라가 이 모양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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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응원하는 '응팔' 가수 이정석 "나라가 이 모양이라..."

입력
2016.11.23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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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이정석(오른쪽)이 지난 19일 서울 시청역 3번 출구 앞에서 촛불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에게 “받아가세요”를 외치며 무료로 핫팩을 나눠주고 있다. 쉐어앤케어 제공
가수 이정석(오른쪽)이 지난 19일 서울 시청역 3번 출구 앞에서 촛불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에게 “받아가세요”를 외치며 무료로 핫팩을 나눠주고 있다. 쉐어앤케어 제공

“소중한 국민은 감기 걸리면 안 됩니다.” 지난 19일 오후 1시 서울 중구 지하철 1호선 시청역 3번 출구 앞. 네 사내가 지나가는 시민들에 핫팩을 공짜로 나눠줬다. ‘박근혜 대통령 하야’를 요구하는 촛불집회에 모인 이들이 밖에서 떨지 않도록 하기 위한 자선의 손길이었다. “어? 가수 아니세요?” 한 사내가 두 손을 입에 모아 “(핫팩) 받아가세요”라고 외치자 지나가는 시민들의 눈이 그에게 쏠렸다. 노래 ‘사랑하기에’ 등으로 1980년대 후반 큰 인기를 누린 가수 이정석(49)이 거리로 나와 촛불집회에 힘을 보태자 놀란 눈치였다. 이정석은 자신을 알아보는 시민들에 “고맙습니다”라고 가벼운 인사를 전하며, 오후 4시까지 세 시간 동안 핫팩 1만개를 돌렸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기반으로 한 기부 플랫폼 회사와 손을 잡고 한 일이다.

“쑥스럽지 않냐고요? 아뇨, 뿌듯하고 즐거웠어요.” 이정석은 “’촛불 함성’을 들으러 가기 전 가볍게 한 일”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는 지난 5일부터 매주 토요일 광화문에 나와 촛불을 밝혔다. 이정석은 “나라가 이 모양이라…”며 거리로 나온 이유를 밝힌 뒤 “국민으로서 당연히 내야 할 소리를 내러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이정석은 26일에도 시청역으로 나가 촛불집회에 참석할 시민에 ‘손난로’를 돌린다. 그는 평화적으로 끝난 ‘100만 촛불 집회’를 보며 “희망을 봤다”고 했다. “가족들이 함성을 외치는 모습을 보고 울컥하더라고요. 아직 살만한 나라고 시대란 생각이 들었어요.”

가수 이정석이 한 프로그램에서 노래하고 있다. KBS 제공
가수 이정석이 한 프로그램에서 노래하고 있다. KBS 제공

“공산당이냐 욕 먹기도”… 위안부 문제도 발벗고 나선 가수의 곤욕

이정석의 사회 참여는 처음이 아니다. 이정석은 지난해 현충일에 미국 뉴저지 주의 코리아프레스센터에서 공연을 열고 수익금을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12명의 증언을 담은 영문판 구술집 ‘들리나요?’(Can you hear us?) 배포 기금으로 기부했다. 이정석은 “당시 영화 ‘귀향’이 투자 등의 이유로 제작이 미뤄지고 있다는 얘길 들었다”며 “위안부 문제를 더 많은 사람에 알리고 잘못된 정보를 바로 잡아야겠다는 생각에서 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런 행보들로 이정석은 일부 네티즌으로부터 ‘공산당’이란 비난까지 듣는다. 감미로운 발라드로 인기를 누렸던 가수는 어떻게 ‘거리’로 나오게 됐을까. 막내 딸이 고등학교 2학년이라는 이정석은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 논란 등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서 현실에서 부딪히는 문제들이 있었다”며 “어떤 정권이든 실수와 비리가 있었지만, 이번 정권은 너무 심하다 싶었다”고 말했다.

‘여름날의 추억 ’ 등이 실린 가수 이정석의 3집 재킷 사진.
‘여름날의 추억 ’ 등이 실린 가수 이정석의 3집 재킷 사진.

‘응팔’이 추억한 ‘첫눈이 온다구요’… 내달 30주년 공연

이정석은 1~3집에 실은 ‘사랑하기에’ ‘사랑의 대화’ ‘여름날의 추억’ 등을 연달아 성공시키며 1980년대 후반 가요계를 풍미했다. 올 초 화제 속에 끝난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도 그의 히트곡인 ‘첫눈이 온다구요’와 ‘여름날의 추억’이 나와 시청자의 향수를 자극하기도 했다. 이정석은 “드라마에 삽입된 노래를 듣고 딸이 아빠가 유명한 가수였다는 걸 알게 된 게 큰 소득”이라며 웃었다.

이정석은 1986년 12월 열린 MBC ‘대학가요제’로 데뷔했다. 직접 작곡한 ‘첫눈이 온다구요’로 금상을 타 얼굴을 알린 만큼, 곡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이정석은 “여름에 ‘강변가요제’에 나갔는데 예선에서 떨어졌다”며 “이유를 고민하다 첫 2~3마디가 중요하다는 생각에 멜로디를 바꾸고 ‘대학가요제’가 열리는 12월 분위기에 맞게 가사를 붙여야겠다고 생각해 만든 노래”라고 데뷔 곡에 얽힌 얘기를 들려주기도 했다.

이정석은 데뷔 30주년을 맞아 내달 23일과 24일 서울 성동구 소월아트홀에서 공연을 연다. ‘추억’을 주제로 이규석 등 동료 가수들과 함께 꾸리는 무대다. 공연 수익금은 모두 경제적 취약 계층의 청소년을 위해 쓰인다. 이정석은 “처음엔 30주년 기념 공연을 하지 않으려 했다”며 “사회적으로 뒤숭숭한 때 기부 공연으로 나눔을 실천하자는 취지에서 준비한 공연”이라고 말했다.

이정석은 1992년 5집을 낸 뒤 “연예 활동에 지치고 염증을 느껴” 미국으로 떠나기도 했다. 전성기 시절에도 예능프로그램에 잘 나가지 않았던 그는 최근까지 지상파 방송사의 한 인기 예능프로그램에서 네 번이나 섭외 요청을 받고도 모두 거절했다고 한다. 음악이 희화화되는 게 싫어서라고 한다. “가수는 공연으로 팬들과 만나면 된다고 생각해요. 아직 새 앨범 발매 계획은 없지만, 꾸준히 공연하며 노래하려고요.”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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