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산 김재호/사진=한국스포츠경제 DB
[한국스포츠경제 김주희] "두산에 처음 계약하러 가던 기분이 나던데요."
두산 김재호(31)는 '13년 전' 그때를 떠올렸다. 중앙고를 졸업한 그는 2004년 두산 1차 지명으로 계약금 2억원을 받으며 프로에 첫 발을 내디뎠다. 그리고 지난 15일, 두산과 계약기간 4년, 총액 50억원의 조건으로 FA(프리 에이전트) 계약을 맺었다. 김재호는 "야구하기 잘했다 싶더라"며 웃음지었다.
'무명' 생활이 길었기에 의미가 남다른 'FA 대박'이다. 고교 시절까지 '대형 유격수'로 평가 받았지만, 프로에서 그의 역할은 '백업'이었다. 기회는 데뷔 11년차이던 2014시즌에야 찾아왔다. 손시헌(36·NC)이 NC로 떠나면서 그간 묵묵히 땀을 흘려온 김재호가 주전 자리를 꿰찼다. 이후 승승장구다. 지난해에는 프리미어12에서 태극마크를 달았고, 올해는 FA로 따뜻한 겨울까지 보내고 있다. 50억원은 2005년 박진만이 현대에서 삼성으로 이적하며 받았던 39억원을 뛰어 넘는 FA 유격수 최고액이다. 다시, 출발선에 선 느낌이라는 김재호는 "몇 년간 해온 것처럼 꾸준한 모습을 계속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FA 계약하고 일주일 정도가 지났다. 계약 전후의 차이가 있나.
"계약을 하기 전에는 '내가 어느 정도 대우를 받을까, 날 어떻게 평가할까'에 대한 걱정이 있었다. 내가 다른 팀에 가게 되면 어떻게 될까. 진짜 여러가지 생각을 많이 했다. 만약 다른 팀에 간다면 잘 정착할 수 있을까, 팬들에겐 어떻게 보여질까 싶기도 했다."
-도장을 찍고 나서는 어떻게 달라졌나.
"신인 때 두산에 계약을 하러 간 기분이었다. 아마추어에서 다시 프로로 온 느낌. 신기했다. 새롭게 계약서를 쓰면서 13년 전에 계약서를 썼던 그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마음 한 켠에서 웃음이 많이 났다."
-백업 생활이 길었다. FA 대박이 남다를 것 같다.
"야구하기 잘했다, 나도 할 수 있다?(웃음) '하면 된다'는 마음 가짐이 중요한 것 같다. 어릴 때부터 계속 경기에 나가고, 고등학교 때도 많은 관심을 받았다. 당연히 프로에 와서도 처음부터 잘 하겠지 하다가 자존심이 꺾였다. 시련을 겪으면서 '아, 이렇게 해야 되는 걸 알게 되면서 야구를 다시 배우고, 성장해서 김재호라는 선수가 태어났다고 생각한다. 그런 부분에서 '하면 되는 구나' 싶은 거다. '어렵다, 어렵다'하면 안 된다."
-고교 시절 '천재 유격수'로 불렸기 때문에 더 힘들었을 것 같다.
"솔직히 고등학교 때까지는 많은 노력을 안 했다. 잘 때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면서 '내일은 이렇게 홈런을 쳐야지' 하면 다음날 경기에서 정말 홈런을 치고 그랬으니까. 프로에 오니 그게 아니더라. 아마추어 때는 한 경기를 하고 쉬는데 프로는 계속 경기가 이어진다. 그걸 몰랐던 거다. 그냥 무턱대고 하니 체력이 떨어져서 따라 갈 수가 없었다. 나중에서야 나만의 야구를 해야 하니까 나만의 스타일을 만들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어떻게 준비해야 내 것을 보여줄 수 있겠구나를 배워가면서 야구를 다시 시작한 것 같다. 지금도 1,2군을 오르내리는 선수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많이 해준다. 그 친구들을 보면 내 옛날 모습을 보는 것 같다. '무조건 잘해야 돼'가 아니라 '잘 할 수 있도록 어떻게 만들어야겠다'가 먼저가 돼야 한다. 1군에서 잘 해야만 된다고 생각하니까 너무 멀어 보이는 거다. 하지만 그 선수들 입장에서는 아마 잔소리로 들릴 거다."
-그런 어려움을 겪었지만 결국 역대 FA 유격수 최고 금액을 받았다.
"박진만 선배의 기록이 12년 만에 깨졌다더라. 박진만 선배는 어렸을 때부터 쭉 잘했던 선수고, 나는 솔직히 잘 한 건 딱 2년 만 잘했는데 최고 대우를 받았다. 사람들이 '너무 많이 받았다'고 이야기를 해서 나도 다른 사람들 입장에서 생각도 해보게 되더라. 내 기사의 댓글 80%는 비난이다. 사람인지라 그런 글을 보면 속이 상하기도 한다."
-거품 논란을 보며 '실력을 보여주고 싶다'는 자극이 들지는 않나.
"그런 부분이 생기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거에 흔들리면 오버페이스가 될 수 있다. 항상 내가 몇 년간 해온 것처럼 꾸준한 모습을 계약기간 동안 보여줄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당장 내년에 금액의 가치를 보여주기 위해서 오버페이스를 하면 역효과가 날 수 있다. 절대 욕심 부리지 않고, 내 위치에서 건강한 모습으로 경기에 많이 나가는 게 팬들에게 보답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김재호의 전성기는 이제 시작이라고 보면 될까.
"그렇게 얘기하면 자만할 것 같다. 프로에 오자마자 잘 한 게 아니라 늦게 꽃피웠기 때문에 마음을 놓기가 쉽지 않다. 어릴 때 다른 선수들을 보면서 부러워도 해봤고, 불만을 가져보기도 했고. 그런 시절을 겪어왔기 때문에 '나 이제 야구 잘하니까 됐어' 이렇게는 못하겠다. 주변에서 이제 '성공했다, 마음 편히 해라'하는데 그게 잘 안 된다.(웃음)"
김주희 기자 juhee@spor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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