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창조벤처단지라는 곳이 있다. 문화벤처의 베이스캠프를 모토로 내걸고 다양한 벤처ㆍ스타트업 기업의 입주를 받았다. 여기 입주한 기업들은 대부분 젊은 문화예술계 종사자들이 꾸린 소규모 신생 기업들로, 단지는 이 젊은 창업가들을 위해 임대료와 각종 인프라 등을 지원했다. 돈도 돈이지만 문화산업 종사자들이 한 곳에 모여 서로 교류하고 협업할 수 있다는 것은 그 이상의 가치가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 희망이 가득한 이야기는 1년여 만에 파탄이 난다. 이 사업이 알고 보니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언론은 이 사업을 최순실과 차은택의 ‘먹잇감’으로 규정하기까지 했고, 국회에서는 사업 예산을 ‘최순실 예산’으로 규정짓고 칼을 들이댈 계획을 논의하고 있다.
최순실 사태의 심각성이야 두 번 말하면 입이 아플 지경이고, 이에 연관된 부분이 있다면 도려내는 게 마땅할 것이다. 하지만 그 전에 잠시, 여기 입주한 젊은 기업인 A씨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A씨는 최순실이란 이름은 뉴스에서 처음 들었고, 차은택도 그런 사람이 있다는 사실 정도만 알 뿐 일면식조차 없는 젊은 예술인이다. 말이 좋아 사장이지, 스타트업이 대체로 그렇듯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일인 다역을 소화하며 죽어나는 중이다. 그는 임대료라도 아껴 더 많은 사업을 추진해보고자 입주를 지원했고, 13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성공했다.
대단한 변화가 있었던 건 아니다. 여전히 그는 각종 제안서를 들고 동분서주하고 있고, 마음처럼 풀리지 않는 사업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그저 한 숨 돌릴 만한 작은 여유가 생겼을 뿐이다. 하지만 세간에는 입주자들 모두가 최순실의 부역자이며 거대한 특권을 손아귀에 쥐기라도 했던 것처럼 소문이 쏟아지고, 일부는 그 때문에 계약을 파기당했다는 얘기까지 들린다. A씨는 예산이 삭감되며 언제 방을 빼야 할지 모른다는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A씨의 이야기는 가상의 이야기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겪는 현실이기도 하다. 대다수의 입주자들은 최순실과는 일면식도 없고, 정직한 노력으로 정당하게 기회를 잡은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최순실 사태의 파장은 그런 사람들을 피해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 반대다. 최순실은 이제 기소되어 구치소에 있지만, 몸뚱아리가 갇혔다 해서 그가 저지른 죄의 파편들이 같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건 아니다. 진짜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이 몸을 피하고 있는 동안, 파편은 그저 거기 서 있었을 뿐인 보통 사람들을 잔인하게 찔러댄다. 부의 낙수효과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미 증명되었다는데, 불행과 고통의 낙수효과는 어찌 이토록 뚜렷하게 우릴 괴롭히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소재로 한 영화 ‘빅 쇼트’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일어난 일들을 이렇게 요약한다. 책임자들이 책임을 지는 일도, 증권거래위원회가 개혁되는 일도, 파생상품이 규제되는 일도 없었다고. 대신 은행은 보너스를 챙기고, 로비로 개혁을 중단시켰으며, 이민자와 가난한 사람들을 탓하기 시작했다고. 그리고 그동안 미국에서만 800만명이 일자리를 잃었으며 600만명이 집을 잃었다고 말이다. 고통의 낙수효과란 그런 것이다. 가진 게 없을수록 고난에는 취약하다. 높으신 분들이 일으킨 파장은 젊고 약한 우리에게는 목줄을 죌 정도로 큰 파도가 되어 쏟아진다.
사태는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박근혜 대통령은 자신을 피의자로 적시한 검찰 발표를 사상누각에 비유하며 검찰 수사를 거부했다. 그 뉴스는 A씨 같은 사람들의 눈에 어떻게 비춰질까. 국정농단 사태로 직ㆍ간접적인 피해를 입은 사람은 비단 A씨 같은 이들만이 아닐 것이다. 대통령은 그 모든 고통을 외면하고 자신의 안위를 지키기로 한 것 같으니, 우리는 A씨 같은 이들이 진 부당한 짐을 진짜 책임을 져야 할 바로 그 사람들에게 적확히 되돌려주어야 한다.
임예인 슬로우뉴스, ㅍㅍㅅㅅ 편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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