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엔 劉 겨냥해 “사퇴가 정도”
국정농단 관련 압박 쏟아지자
“국정 수습 먼저” 반대 논리 맞서
누군가의 사퇴를 촉구했던 때와, 자신이 사퇴를 요구받는 상황에서 새누리당 친박계 지도부의 논리는 달랐다. 친박계 지도부는 최순실(60ㆍ구속) 국정농단 사태의 책임을 지고 사퇴하라는 당 안팎의 요구에 “국정 수습이 먼저”라고 버티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국회법 파동 당시 “국정 혼란이 우려된다”며 끝내 유승민 전 원내대표의 사퇴를 관철했던 때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6월 25일 오전 박근혜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배신의 정치를 심판해달라”며 집권 여당의 원내사령탑인 유 의원을 지목했다. 곧바로 친박계는 유 전 원내대표가 사퇴한 7월 8일까지 강경 발언을 쏟아내며 밀어붙였다.
당시 지명직 최고위원이던 이정현 대표는 박 대통령의 발언이 있던 당일 오후 의원총회에서 “당 화합을 위해 깔끔하게 정리하는 것도 방법”이라며 유 전 원내대표의 사퇴를 촉구했다. 이 대표는 이튿날 최고위원회의에서는 “이미 깨진 유리잔과 같아서 붙일 수가 없다”고 했고, 자신의 트위터에 “사퇴가 정도(正道)다. 정도로 가면 길이 열린다”고 썼다. 또 29일 최고위원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서는 “당헌ㆍ당규에 원내대표 해임에 관한 규정은 없다. 거취는 정치적으로 결론 내릴 사안”이라고 주장했다. “유 원내대표가 정상적인 업무 수행이 불가능해진만큼 조속히 물러나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최순실 사태로 이달 초부터 당내 비박계, 거기에다 야당으로부터도 사퇴 압박을 받고 있는 이 대표는 당시 논리를 거꾸로 펴며 맞서고 있다. 지난 7일 최고위원회의에서 그는 “국정공백을 최소화하고 국정을 정상화해 정치를 복원하는 시간이 제게 필요하다”는 논리로 사퇴를 일축하고 “위기 상황에서 기적을 만들도록 기회를 달라”고 했다.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수습과 추가경정예산 처리, 건강보험료 체계 개선 등 민생현안 해결에 시간을 달라고 했던 유 전 원내대표의 항변과 오버랩 된다. 더불어민주당ㆍ국민의당 등 야권까지 나서 새누리당 지도부를 인정하지 않겠다고 경고했지만, 이 대표는 “30만 당원의 손으로 뽑은 지도부”라며 강경하게 버티고 있다.
지난해 국회법 파동 당시 친박계 돌격대 역할을 했던 이장우 최고위원은 최근의 지도부 사퇴 압박에 대해 “난파 직전의 새누리당호에서 선장도 항해사도 다 뛰어내리면 폭풍우를 뚫고 갈 수 없다”고 항변하고 있다. 21일 최고위 회의에서는 “어떤 경우라도 돌을 맞으면서 슬기롭게 어려움을 헤쳐나가자”고 했다. 하지만 이는 “당청 갈등에 아무 일 없는 듯 두루뭉술 넘어갈 수 없다”(지난해 6월 29일)거나 “백의종군 자세로 명예롭게 스스로 거취를 표명하는 것이 당내 화합을 위한 길”(지난 해 7월 7일)이라며 유 전 원내대표를 겨냥했던 것과는 결이 다르다. 친박계인 조원진 최고위원도 지난해 “유 원내대표가 지혜로운 결정을 하라”(6월 30일), “잘잘못을 말할 수는 없지만 분란은 막아야 한다”(7월 8일)고 주장한 바 있다.
헌정 사상 처음 대통령이 피의자 입건된 상황에서 지난해 6월 이 대표의 의총 발언도 새삼 주목 받고 있다. 이 대표는 “13년 동안 봐 왔던 박 대통령은 사즉생의 각오로 헌법적 가치를 지키는 사람으로 그 가치를 위해선 과감하게 정치생명을 거는 분”이라고 했다.
서상현 기자 lss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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