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순리를 거스르고 민심과 맞서기로 아주 작정한 모양이다. 20일 최순실씨 국정농단사건 검찰 중간수사 발표를 깡그리 부인하고 검찰조사 거부를 선언하더니 21일에는 얼마 전 박근혜 대통령이 제안했던 ‘국회 추천 총리’에 대해서도 다른 말을 했다.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은 “야당은 대통령이 제안과 다른 뜻으로 요구하고 있다”며 “조건이 좀 달라졌으니까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상황이 달라졌다는 이유로 국회 추천 총리 제안을 철회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될 만하다.
정 대변인은 논란이 커지자 “국회의장 방문 시 대통령이 총리 권한에 대해 한 말씀에서 입장 변화가 없다”고 해명했지만 내심은 뻔해 보인다. 지금 야 3당은 탄핵절차를 구체화하기에 앞서 황교안 현 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는 사태를 피하기 위해 박 대통령이 제안한 바에 따라 국회의 총리 추천을 서두르려 한다. 청와대는 여기에 다른 조건을 내세워 야당이 바라는 상황을 만들어 주지 않겠다는 것이다. 정국혼란 조기 수습에 협조하기보다는 정치게임에만 몰두하는 셈이다. 국민이 납득할 만한 총리 후보자를 추천하지 못하고 미적거린 야당에도 문제가 있지만 어깃장만 놓으려는 청와대의 자세는 참으로 개탄스럽다.
청와대가 검찰의 조사를 거부하면서 ‘중립적 특검’을 거론한 것도 또 하나의 꼼수로 비친다. 박 대통령이 2차 대국민사과 담화에서 특검 조사를 수용하겠다고 약속한 만큼 국회에서 통과된 특검 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는 생각하기 어렵다. 하지만 야당이 추천하는 특별검사 후보에 대해 이런저런 트집을 잡아 특검 조사 진행 과정에서 제동을 걸 개연성은 충분하다.‘중립적 특검’은 바로 이를 염두에 둔 포석으로 보인다.
검찰의 중간수사 발표에서 드러난 범법사실만으로도 박 대통령은 더 이상 국정을 이끌 자격과 권위를 상실했다. “상상과 추측을 거듭해서 지은 사상누각”이라고 아무리 부정해 봐야 드러난 사실들은 너무나 구체적이다. 박 대통령은 이제 엄연한 현실을 인정하고 나라와 국민, 그리고 자기 자신을 위해서 무엇이 최선의 선택인지 냉철하게 판단해야 한다.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은 주말마다 거세게 타오를 것이다. 촛불시위의 주축은 과격단체나 전문적 시위꾼이 아니라 평범한 시민들이다. 박 대통령이 버티면 버틸수록 정국 수습은 더디고 국정 공백과 혼란은 가중될 뿐이다. 질서 있는 퇴진이든, 탄핵절차 진행이든 혼란을 최소화하려면 박 대통령의 협조가 필요하다. 나라와 국민을 위한 현명한 결단을 거듭 촉구한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