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은 경남 함양군 옥매리 옥동마을에서 자랐다. 변변한 노래방도 없는 지리산 인근 마을에서 이불을 둘러쓰고 노래를 부르는 게 취미였다. 고등학교 졸업 뒤엔 건설 현장에서 일용직으로 벽돌 등을 나르며 가수의 꿈을 키웠다. 현실은 가혹했다. 그는 Mnet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K3’(2011)부터 ‘슈퍼스타K7’(2015)까지 5년 연속 떨어졌다. 작은 체구에 특별히 내세울 것 없는 외모인 그를 받아주는 연예기획사도 없었다. 꿈에 볕이 들기 시작한 건 최근이다. 가수 거미는 그의 노래를 듣고 눈물을 훔쳤고, 유명 작곡가 용감한형제는 “진짜 노래를 들은 것 같다”고 극찬했다. 5전 6기 끝에 ‘슈퍼스타K 2016’ 톱7에 오른 김영근(20)얘기다.
김영근이 ‘제2의 허각’으로 주목 받고 있다. 외모와 학벌 등 별다른 배경 없이 어려운 가정 환경을 딛고 노래 실력만으로 시청자의 귀를 사로 잡고 있다. ‘환풍기 수리공’ 허각의 인생유전을 닮았다. 맑은 목소리로 읊조리듯 노래하는 게 그의 매력이다. 터질듯한 고음을 자랑하는 건 아니지만, 약관의 청년이 내는 소리는 웅숭깊기까지 하다. 김영근이 지난달 방송에서 부른 이문세의 ‘사랑 그렇게 보내네’ 영상은 입소문을 타고 인터넷에서 조회수 250만 건을 넘어서며 인기다. 그가 경연에서 부른 ‘바보처럼 살았군요’를 들은, 일흔이 넘은 원곡 가수 김도향의 입에선 “도사 같다”는 말이 나왔다. 삶의 역경을 초월한 듯 곡의 맛을 잘 우려냈다는 얘기다.
월세 35만 원 집 서 살며 친구 옷 빌려 입고 나와
김영근의 가수 도전기는 한 편의 ‘인간극장’ 같다. 김영근의 지인에 따르면 김영근은 인천시 부평역 인근에 월세 35만원짜리 집에서 아는 형과 둘이 살며 꾸준히 오디션의 문을 두드렸다. 입을 옷이 변변치 않아 그는 방송에 친구 옷을 빌려 입고 나왔다. 김영근은 지난 9월22일부터 이달 10일까지 8주 동안 방송에서 단 두 벌의 옷을 입고 나오는데, 자신의 옷은 서울 동묘의 벼룩시장에 샀다. 김영근의 아버지는 아들이 트로트 가수가 되길 바랐다고. 뚜렷한 직장이 없는 아들이 행사라도 뛰어 밥벌이라도 하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김영근은 정식으로 노래를 배운 적이 없다. 산삼축제에서 금상을 받은 게 수상 이력의 전부다. 딱히 내세울 것 없던 그는 앞선 ‘슈퍼스타K’에서 모두 지역 예선 ‘퇴짜’라는 쓴 잔을 들었다. 고음이 강한 지원자가 아니라 눈에 띄지 않은 탓이다. 김영근을 처음 알아 본 이는 리듬앤블루스(R&B) 가수 크러쉬였다. ‘슈퍼스타K 2016’ 관계자에 따르면 크러쉬는 지난 7월 서울에서 열린 예선 심사에서 김영근의 노래를 듣고 “어, 뭐지”라고 놀란 뒤 그에게 재차 노래를 시켜 본 뒤 합격 도장을 찍었다. 또 다른 프로그램 관계자는 “예년과 비교해 올해 예선 지원자가 상대적으로 적었다”며 “그만큼 지원자 목소리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과 여건이 돼 김영근이 5년 만에 수면 위로 나온 것 같다”고 귀띔했다.
‘산삼 축제’ 금상이 전부… 가요기획사에선 찾을 수 없는 ‘목소리’
‘지리산 솔’ 김영근은 ‘슈퍼스타K2016’의 유력한 우승 후보로 점쳐지고 있다. 그의 때 묻지 않은 목소리에 빠져 ‘흙수저의 반란’을 기대하는 네티즌이 많다. 김영근은 지난 17일부터 프로그램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진행중인 온라인 사전 투표(24일 방송에 반영)에서 21일 기준 34%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1위를 달리고 있다. 17%로 2위를 차지한 밴드 코로나 보다 두 배나 높은 지지율이다. 가요계에서도 김영근을 주목하고 있다. “기존 대형가요기획사 연습생 출신에게선 나올 수 없는 기교 없는 목소리”라는 평이 많다. 그는 방송에서 한대수의 ‘행복의 나라로’와 토마스 쿡의 ‘집으로 오는 길’ 등 비주류 곡을 주로 선곡한 뒤 자신 만의 스타일로 재해석해 주목 받았다. 김성환 음악평론가는 “김영근은 자신의 삶을 노래에 풀어내는 능력이 탁월하다”며 “비주류적 감성으로 가요계의 활력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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