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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변방에서 중심으로 사는 곳, 콜롬비아 팔로미노

입력
2016.11.21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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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비아 산타 마르타는 여행자에게 참 욕을 많이 먹는 도시다. 시끄럽고 번잡한데, 결정적으로 자체 매력이 적다. 그럼에도 민카(Minca), 타강가(Taganga), 그리고 타이로나(Tayrona) 국립공원 등 콜롬비아 북부를 여행하려면 통과의례처럼 반드시 거쳐야 한다.

이중 타이로나 국립공원은 여행자에게 걸림돌이 꽤나 많은 곳이다. 해변 가는데 입장료가 웬 말이냐는 투정(외국인은 3만9,500 콜롬비안 페소, 약 1만5,000원), 괜찮은 캠핑장에 자리 잡으려면 정글 속을 기어서 가야 한다거나, 제대로 씻거나 용변을 해결할 생각 따위는 버리라는 경고 등이 최후통첩처럼 날아온다. 당시 맹장 수술 후유증이 남은 상태여서 과감히 여행지 리스트에서 제외시켰다. 대신 정한 여행지가 팔로미노(Palomino)다.

세상의 중심에서 살아서인가. 팔로미노의 인디오들은 상대가 가장 기분 좋아지도록 웃는다.
세상의 중심에서 살아서인가. 팔로미노의 인디오들은 상대가 가장 기분 좋아지도록 웃는다.
야자수와 설산, 정반대의 계절을 함께 볼 수 있는 팔로미노.
야자수와 설산, 정반대의 계절을 함께 볼 수 있는 팔로미노.

팔로미노는 산타 마르타로에서 타이로나 국립공원을 지나 약 70km 떨어진, 카리브해와 시에라 네바다 산맥이 한눈에 들어오는 해안 마을이다. 카리브해와 팔로미노강이 딱 입맞춤을 하는 지점이다. 민카가 시에라 네바다의 해발 660m에 걸터앉아 그 속살을 이해하는 곳이라면, 팔로미노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연안 풍경에 충격 받는 곳이다. 시에라 네바다의 정상은 자그마치 해발 5,775m다. 팔로미노 해변에서도 거리에서도 피라미드형 설산이 보인다. 발가락 사이에 땀이 차오르는데도 풍경이 한겨울이다. 정글과 바다가 인접한 콜롬비아의 변방 중에서도 변방, 팔로미노는 세상의 끝에서 언제나 허리케인과 홍수로 깊은 내상을 입었다.

기사가 목이 말라서, 상대편 기사와 말하고 싶어서, 아무 이유도 없이 서는 산타 마르타-팔로미노행 버스.
기사가 목이 말라서, 상대편 기사와 말하고 싶어서, 아무 이유도 없이 서는 산타 마르타-팔로미노행 버스.
제법 정리가 잘된 전선줄에도 놀라게 되는 마을. 인터넷 속도는 자연만 보라는 듯 느리다.
제법 정리가 잘된 전선줄에도 놀라게 되는 마을. 인터넷 속도는 자연만 보라는 듯 느리다.
서핑보드와 해먹, 모기장은 카리브해 숙소의 필수 아이템. 다른 건 옵션이다.
서핑보드와 해먹, 모기장은 카리브해 숙소의 필수 아이템. 다른 건 옵션이다.
새를 보기 위해서는 침묵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 –로버트 윌슨 린드(아일랜드 작가)
새를 보기 위해서는 침묵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 –로버트 윌슨 린드(아일랜드 작가)

변방이란 꼬리표답지 않게 팔로미노 가는 길은 어렵지 않다. 해변과의 만남과 헤어짐을 거듭하는 90번 고속도로로 통한다. 산타 마르타에서 가는 버스는 마을버스와 흡사하다. 왼쪽 창가로 바다를 끼고 달리는 버스는 엔진의 전율을 한 몸에 받는 뒷좌석이 상석이다. 도시의 때를 벗으며 인디오와의 시간 여정이 되기 때문이다.

코기(Kogi)와 아루아코(Arhuaco) 등 인디오는 팔로미노 주변 1만7,000㎢ 면적의 시에라 네바다를 집으로 삼고 있다. 이 땅 부자들의 패션은 가히 파격적이다. 섹시할 리 없는 한쪽 어깨를 드러낸 긴 머리 사내, 나이는 50대로 추정된다. 아이들은 저마다 무명 포대기를 튜닉처럼 뒤집어썼다. 피부는 태양을 흠뻑 먹어 새카맸다. 카리브해의 태양은 그저 휴가를 즐겁게 보내려던 미국인이 고국으로 돌아가 피부과로 직행할 만큼 악명이 높다. 그와 달리 이들은 카리브해를 스펀지처럼 흡수했다. 버스가 달릴 때면, 그들의 머리칼 사이로 짭조름한 비린내가 났다.

동네가 작아 숙소도 쉽게 찾았다. 앞뒤로 넉넉하게 정원을 낀 2층 집은 해변이 지척에 있었다. 눈만 깜짝거려도 땀이 주르륵 나는데 2층에선 설산이 보였다. 인적이 드물어 자연이 돋보이는 풍경이다. 숙소에서 해변까지 제법 거리가 있었는데 늘 금세 닿았다. 해변으로 이어지는 비포장 길은 야자수 그림자가 수놓고, 늘 새가 숨바꼭질하듯 울었다. 한 마리가 울면 릴레이 하듯 다른 목청의 새가 울었다. 나무는 벌레를 막기 위해 페인트가 칠해져 있다. 콜롬비아는 남미에서도 언제나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명징한 색을 보인다. 나무 역시 그들의 국기처럼 붉고 노랗고 파랗게 물들어 있었다.

경고장이 구명조끼를 입을 정도로 위험하다. 파도가 사람을 딱 삼켜 먹기 좋다.
경고장이 구명조끼를 입을 정도로 위험하다. 파도가 사람을 딱 삼켜 먹기 좋다.
카리브해에서 이렇게 거세된 듯한 해변이 있을까. 비키니와 초콜릿 복근은 찾기 힘들다.
카리브해에서 이렇게 거세된 듯한 해변이 있을까. 비키니와 초콜릿 복근은 찾기 힘들다.
오후 2시경 낚싯배조차 육지를 벗어나려면 진통을 한 차례 겪는다. 파도가 뭐길래.
오후 2시경 낚싯배조차 육지를 벗어나려면 진통을 한 차례 겪는다. 파도가 뭐길래.

해변에 서니 바다와 독대하는 느낌이다. 인적 드문 해안선이 5km나 이어진다. 팔로미노의 바다는 ‘보는’ 바다다. 삼켜버릴 듯한 파도 때문에 시야조차 하얗게 흐려진다. 물놀이는 바다 반대편 강에서 타이어 튜브로 급류를 타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마침 낚싯배 한 척이 힘겹게 육지와의 이별을 시도했다. 도미, 농어, 고등어, 메로, 그리로 톱상어 등 망만 던지면 잡힌다고 했다. 해변의 외진 곳에선 한 가족이 웃으며 가오리를 난자하고 있었다. 어촌마을 같은 풍경이지만 그리 부르는 건 대단한 오해다. 약 99.9톤의 연간 어획량은 4,000여 주민의 약 0.5%의 손으로부터 나올 뿐이었다.

새하얀 면 튜닉을 뒤집어쓴 인디오 소녀. 눈을 빤히 쳐다보기에, 나 역시 그들을 응시하는데 이상 무!
새하얀 면 튜닉을 뒤집어쓴 인디오 소녀. 눈을 빤히 쳐다보기에, 나 역시 그들을 응시하는데 이상 무!
정통 아루아카 모칠라는 여성(엄마 혹은 아내)이 오직 남성을 위해서만 만들었다. 지금은 전세계 남녀노소에게 양보된다.
정통 아루아카 모칠라는 여성(엄마 혹은 아내)이 오직 남성을 위해서만 만들었다. 지금은 전세계 남녀노소에게 양보된다.

이곳 모래사장에서도 코기족과 아루아코족 인디오 무리를 마주쳤다. 코기는 그들의 언어로 ‘표범(jaguar)’이란 뜻이다. 시에라 네바다에서 여전히 (스페인이 정복할 때처럼) 자연의 아들, 딸로 살아가는 이들이다. 그들의 종교 대상은 어미(Great Mother)다. 반면, 아루아코는 아비다. 새하얀 옷 색은 숭배 대상의 순수한 존재를 상징한다고 했다. 두 부족 모두 수공예품이 밥벌이 중 하나인데, 정통 아루아카 모칠라(mochila, 가방)는 콜롬비아의 수도 보고타에서도 최상으로 쳐준다. 선인장, 목화 등 땅에서 얻은 재료로 개구리나 뱀, 산 정상 등을 땅의 색으로 수놓는다. 이들의 기준에선 시에라 네바다가 세상의 심장이요, 중심이다.

세상의 중심을 어슬렁거렸다. 새들과 제대로 숨바꼭질을 할 예정이었다. 카메라를 사냥총마냥 여기저기 나무를 향해 조준하자, 뒤따라오던 인디오 꼬마의 까만 눈동자가 더 동그래졌다. 춤추듯 흔들리는 나뭇가지에서 새들은 바람을 서핑하고 있었다. 내일은 좀더 변방으로 갈 것이다. 타강가의 호스텔 주인이 끝내준다면서 사진을 뽐내던 마을이다. 그곳에선 플라밍고가 낮고 높게 비행한다. 카마로네스(camarones), ‘새우’란 뜻의 마을이다.

*다음주는 플라밍고의 성지, 카마로네스(Camarones)로 이어집니다

강미승 여행 칼럼니스트 frideameetssomeon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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