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대통령이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 수사를 거부하고 진실을 은폐하려다 결국 하야한 사건으로는 리처드 닉슨(1913~94) 전 미국 대통령의 ‘워터게이트’가 대표적이다.
공화당 소속 닉슨 대통령은 69년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 닉슨 독트린, 베트남 평화 협상, 중국과 국교 수립 등의 화려한 외교 성과를 냈음에도 불구하고 지지율이 오르지 않았다. 여기에 대중적 인기를 누리던 조지 맥거번(1922~2012)이 민주당 후보로 나서자, 닉슨은 재선 승리를 확신할 수 없었다.
이에 백악관 참모들은 72년 6월 민주당 전국위원회 사무실(워싱턴 워터게이트 호텔)에 도청 장치를 설치하는 비열한 음모를 꾸몄다. 전직 연방수사국(FBI), 중앙정보국(CIA) 요원들이 총지휘를 맡고 정보 요원들이 배관공으로 위장해 도청 장치를 설치했지만, 이 장비가 호텔 경비원에게 발각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처음에는 주거 침입 정도로 여겨지면서 별다른 파장이 없었고, 닉슨은 같은 해 치러진 선거에서 압도적인 표차로 재선에 성공했다. 하지만 이후 재판 과정에서 닉슨이 사건의 배후에 있었다는 점이 밝혀지면서 상황이 반전했다. 이후 2년 동안 닉슨은 진실을 밝히려는 검찰 및 의회에 맞서면서 여론이 악화, 의회 탄핵에 직면하면서 결국 불명예 퇴진하기에 이르렀다.
주목할 점은 닉슨이 검찰 수사에 직면해서도 ‘대통령 면책 특권’을 내세우며 검찰 및 의회와 힘겨루기를 거듭한 점이다. 당시 도청 사건을 꾸민 담당자들 간 대화 내용이 테이프에 기록돼 백악관에 보관돼 있음이 밝혀졌고, 의회 특별위원회는 테이프 제출을 요구했다. 하지만 닉슨이 거부하면서 여론은 완전히 그에게 등을 돌렸다. 이에 닉슨은 사건 수사 담당 검사(아치볼드 콕스)를 해임하는 초강수를 뒀지만, 법무장관(엘리엇 리처드슨)이 이에 반발해 사임하면서 급기야 ‘닉슨 탄핵’ 여론까지 번졌다. 궁지에 몰린 닉슨은 뒤늦게 문제의 테이프를 제출했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더구나 테이프 내용 중 일부가 삭제되는 등 백악관이 의도적으로 사건을 은폐하려 한 정황도 드러났다. 상원 법사위는 74년 닉슨 탄핵안을 상정하기로 했고, 탄핵안 상원 통과가 확실해지자 닉슨은 사건 발생 2년여 만인 8월 9일 대통령직을 스스로 내려놓았다.
대통령 사임까지 몰고 온 워터게이트 사건은 대선 승리를 위해 도청이라는 비도덕적인 수단을 쓴 점도 문제였지만, 사건의 중심에 있던 닉슨이 이를 은폐하기 위해 검찰과 맞서면서 불명예 퇴진까지 자초했다는 게 역사가들의 평가다. 닉슨을 옹호했던 공화당도 역풍을 피해가지 못했다. 닉슨 사임 이후 부통령 대행 체제를 거쳐 진행된 1976년 선거에서 무명의 땅콩 농장주인 지미 카터 민주당 후보에게 정권을 넘겨주는 대가를 치렀다.
다만 닉슨은 스스로 하야하면서 ‘탄핵 대통령’이라는 최악의 상황에서는 벗어날 수 있었다. 탄핵당했다면 감옥행도 피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퇴임 후 닉슨은 저술 및 외교사절단 역할에 전념해 어느 정도 명예를 회복할 수 있었다.
강주형기자 cubi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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