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 시민단체 연합이 주말 비자금 조성 의혹을 받는 나집 라작(63) 총리의 ‘하야’를 요구하며 수도 쿠알라룸푸르를 ‘노란 물결’로 뒤덮는다. 시민 연합을 상징하는 노란 셔츠를 입고 대규모 시위에 돌입하겠다는 것인데, 친정부 세력도 빨간 셔츠를 입고 맞불집회에 나서기로 해 충돌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18일 블룸버그 통신 등에 따르면 말레이시아 80여개 시민단체들로 구성된 ‘베르시’ (Bersihㆍ깨끗함)는 토요일인 19일 수도 쿠알라룸푸르 및 주요 도시에서 이른바 ‘1MDB(1 Malaysia Development Berhad) 스캔들’에 연루된 나집 총리의 퇴진을 촉구하는 반정부 집회를 진행한다. 베르시가 지난해 8월 나집 총리의 하야와 특검 수사를 요구하며 조직한 집회에는 20만명(경찰 추산 3만명)이 참가했다.
집권여당 ‘통일말레이국민기구’(UMNO)는 친정부 집회로 맞불을 놓는다. 특히 UMNO 소속 자말 유노스 의원이 “폭력을 비롯해 어떤 일도 벌어질 수 있다”고 으름장을 놔 대규모 충돌 우려도 제기된다. 경찰도 집회를 불허하고 ‘무력 해산’까지 예고했다. 나집 총리는 “선거를 거치지 않고 정부를 전복하려는 시도는 비헌법적이며 혼란을 초래할 뿐”이라고 사퇴 요구를 일축한 상태다.
1MDB는 나집 총리가 2009년 외국 자본을 유치해 경제 개발을 꾀하겠다는 명목으로 조성한 국부펀드인데 거액의 펀드 자금이 나집 총리와 측근에게 돌아갔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실제로 미국, 싱가포르 등 각국이 공조 수사에 나서 올해 초 유용된 펀드 자금이 약 40억달러(4조 7,000억원)에 달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나집 총리는 “기부금을 잠시 보관했을 뿐”이라고 반박하면서 관련 수사를 담당하던 자국의 검찰 총장을 파면하는 등 진실 규명도 방해해 왔다.
베르시는 1MDB 스캔들이 불거진 지난해 8월에도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벌였지만 나집의 퇴진을 성사시키진 못했다. 민주화 세력의 지지층은 대부분 중국계(인구의 23.4%)로 나집 총리의 정치적 기반 말레이계(68.5%)의 지지를 얻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말레이시아 국제전략연구소 숄토 바이너스 연구원은 “이번 시위에 말레이계가 충분히 참여하지 않으면 나집 세력에 반격의 기회만 마련해 주는 꼴”이라고 전망했다. 이에 따라 이번 시위의 결집 규모가 정국 변화의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야권 분열도 극복해야 할 과제다. 베르시에는 말레이시아 전 총리인 마하티르 모하마드(91)도 참여하고 있다. 하지만 모하마드 전 총리는 재임기간(1981~2003년) 민주화 요구를 탄압한 것으로 악명 높다. 야권 내에선 모하마드의 참여가 나집 퇴진 운동의 동력 상실을 가져올 것이라는 반발도 적지 않다.
정지용 기자cdragon2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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