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퇴진 쉽지 않은 상황에서
국회 추천 총리가 조각권 행사
국정 수습 박 대통령 견제에 나서도록
3野 대표 회동서 박지원 제안에
추미애ㆍ심상정은 “아직 이르다”
손학규ㆍ유승민도 野 역할 촉구
박근혜 대통령이 17일 이틀째 차관 인사를 단행하는 등 내치 권한을 적극적으로 행사하면서 야권 일각에서 국회가 추천하는 총리 인선부터 서둘러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총리 선임을 통해 국정 공백을 메우고, 국정 주도권을 되찾기 위한 박 대통령의 시도를 견제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각 당이 일치된 목소리를 내고 있지 않지만, 대통령의 2선 후퇴 선언이나 탈당 후에 총리 인선을 논의할 수 있다는 기존 입장에서 한 발 물러난 것이다.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비대위원ㆍ국회의원 연석회의에서 “지금 가장 중요한 건 총리 선출”이라고 강조했다. 박 위원장은 “아직은 헌법상 대통령에게 모든 권한이 있기 때문에 야3당이 함께 영수회담을 해서 우선 총리를 선임하고, 그 총리가 인적 청산과 조각에 준하는 개각 후에 검찰수사와 국정조사, 특검이 진행되면 상당한 진전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위원장은 이날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심상정 정의당 대표와의 야3당 대표회동에서 ‘4자 영수회담’을 열어 총리를 교체하자는 제안도 했으나, 추 대표와 심 대표는 아직 시기가 이르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야권의 대선 잠룡인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도 이날 국정 수습에 있어 야당의 역할을 강조하고 “야당이 함께 만나 국무총리를 뽑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날 새누리당ㆍ민주당ㆍ국민의당ㆍ정의당 소속 여야 의원 14명이 기자회견을 열고 박 대통령의 질서 있는 퇴진 등을 대비한 국회 전원위원회 소집을 요구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회견에 참여한 박영선 의원 등 민주당 중진들은 정치권이 국정을 수습할 총리를 합의 선출해야 한다는 데는 공감하면서도 구체적인 행동에 나아가지 못하는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이러한 요구들은 당장 박 대통령의 퇴진을 강제하기가 쉽지 않은 만큼 국회의 추천을 받은 총리가 조각권을 행사함으로써 국정 수습과 대통령 견제에 나서야 한다는 절충론인 셈이다. 뿐만 아니라 야권은 박 대통령의 하야 또는 탄핵 국면에서 발생할 수 있는 국정 공백을 황교안 총리에게 맡길 수 없다는 입장이 확고하다. 이미 박 대통령과 황 총리가 국정 수습의 주체가 될 수 없다는 민심의 판정을 받았다는 이유에서다.
새누리당 비박계에서도 비슷한 주장이 제기됐다. 유승민 의원은 이날 서울이코노미스트클럽 경영자 조찬회 특강에서 “최순실씨 국정농단에 연루된 대통령과 관련자들을 철저히 조사해서 엄벌에 처하는 작업과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한 베스트팀 구성을 병행해야 한다”며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의 끔찍한 악몽을 겪지 않으려면 경제 컨트롤 타워를 시급히 확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야당은 대통령이 수용하겠다는 국회 추천 총리를 하루 빨리 추천하라”며 “총리가 경제부처 장관들을 교체해서 내년 12월에 대선을 치르든 조기 대선을 하든 그때까지 버텨줘야 한다”고 했다.
한편 박 대통령은 이날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으로 유동훈 문체부 국민소통실장을 내정했다. 전날 안총기 주벨기에ㆍ유럽연합(EU) 대사를 외교부 제2차관으로 내정한 데 이어 차관인사를 연 이틀 단행한 것이다. 박 대통령은 전날 김현웅 법무부 장관에게 부산 엘시티 비리 의혹에 대한 신속하고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는 등 2차 대국민사과 이후 중단했던 국정 업무를 본격 재개했다.
김회경 기자 hermes@hankookilbo.com
정승임 기자 cho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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