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어떤 레저 잡지가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언제였는지 떠올려보라’는 설문을 했다. 응답자 중 가장 많은 것이 ‘어린 시절, 해변에서 모래 놀이를 했을 때’였다고 한다.
아름다운 경치의 바닷가에서 든든한 부모님이 지켜보는 가운데 맘껏 놀던 순간. 혼자서도, 누군가와 함께해도 재미있고 어떠한 규칙도 강요도 없이 마음껏 놀면 되는 ‘온전한 자유와 완전한 몰입’의 시간. 사람은 이런 순간에 가장 큰 행복감을 느낀다.
이처럼 놀이는 행복과 맞닿아 있다. 신경과학자들은 놀이가 행복감을 주는 이유로 놀이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을 즐기는 행위이라는 것을 꼽는다. 또한 무언가를 요구받지 않고 남과 비교할 필요가 없고, 철저히 자발적인 동기로 이루어지며, 완전한 몰입감(flow)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이유로 설명한다.
또한, 놀이는 세상과 사회를 배우는 중요한 시간이다. 놀이 행동 전문가 스튜어트 브라운은 어린 시절 많이 놀았던 동물들이 뇌 발달도 더 많이 이루어지고, 민첩성, 문제해결력, 집중력, 심지어 창의성까지 더 뛰어나다고 한다. 동물뿐 아니라 인간도 마찬가지다. 어릴 적 놀이를 통해 위험한 실제 세계를 대처하는 방법을 배우고 육체적, 정신적으로 성장한다. 또한 친구와 함께하면서 관계 자체에서 즐거움을 얻는다. 그러면서 인간만의 관계적 특징인 우정을 경험하게 된다.
아울러 놀이를 통해 인간은 정서적으로 안정되며, 사회성을 기르게 된다. 그리고 어렸을 때 놀이의 기억은 훗날 겪는 위기와 고통을 이겨낼 삶의 동력이 된다. 그런 면에서 놀이의 시간은 어른에게도 필요하다. 삶에서 노는 시간이 없으면 ‘일의 시간’을 감당할 정신적 여력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사람에게는 ‘여유의 시간이 주어졌을 때 무엇을 하며 놀 것인가’도 매우 중요한 고민이다.
놀면서 창의적인 성과(creativity)가 나올 수 있다는 것도 놀이가 주는 ‘덤’이다. 노는 과정에서 마주치는 크고 작은 문제들을 나름의 창의적인 순발력을 해결해야 더 재미있게 오래 놀 수 있다. 더욱이 실패나 결과에 대한 부담, 사고의 검열의 부담도 없으니 놀이 중에 창의적인 생각을 적극적으로 실현해 볼 수 있다. 그런 과정에서 사람의 창의력은 발달한다.
사실 게임도 사람이 즐기는 수많은 놀이 중 하나이다. 그래서 게임은 다른 놀이처럼 행복감을 주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의 게임은 아이의 바닷가 모래 놀이와는 정반대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청소년들은 좁은 방 컴퓨터 속, 혹은 시끄러운 피시방에서 행여 부모에게 들킬까를 걱정하며 게임을 한다. 게임 플레이는 성과와 점수로 나타나고 순위가 매겨지며 경쟁을 강요받는다. 이 경쟁에서 남을 이기는 쾌감을 게임이란 놀이의 진짜 즐거움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온라인 게임에서 발생한 갈등을 직접 만나 해결하는 소위 ‘현피’가 끊이지 않는 것은 게임이 오히려 사람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고 있는 건 아닌가 우려도 있다.
뇌공학자로 살면서 ‘앞으로 게임 산업이 어떻게 발전했으면 좋겠습니까’라는 질문은 종종 받는다. 그때마다 나는 ‘우리의 가장 본질적인 욕망인 ‘놀이의 즐거움’을 온전히 담아내는 게임이 확산되어야 한다’라고 답한다. 지금처럼 경쟁을 부추기는 대신, 어떻게 놀아야 할지를 온전히 내 맘대로 정할 수 있는 게임, 과정 자체를 즐기게 하고 그로 인해 완전한 몰입감을 경험하는 게임, 그 과정이 성장과 창의적인 학습의 시간이 되고, 결국 행복의 순간이 되는 게임 말이다.
이런 관점에서 게임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도 많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매년 진행하는 건전 게임문화 가족캠프처럼 새로운 게임 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게임 과몰입 해결을 돕는 여러 가지 제도적 장치도 있다. 이러한 시도들이 더욱 힘을 얻는 것이 필요하다.
정재승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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