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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령의 길 위의 이야기] 스물두 살 우퍼

입력
2016.11.17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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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두 살 지혜는 신이 나서 배낭을 꾸렸다. 산골 마을에 우프(WWOOF) 자리를 구했다는 거였다. 호주에는 지혜 같은 우퍼(WWOOFER)들이 흔했다. 우프는 농장에 가서 하루 네다섯 시간 정도 일을 거들어주고 숙식을 제공받는 봉사활동이자 문화체험이었다. 지혜는 70달러를 주고 노란색 우프 책을 샀다. 책에는 농가의 주소와 연락처, 그리고 그들이 해야 할 일이 깨알같이 쓰여있었다. “집 고치고 페인트도 칠하고요, 정원을 가꾸면 된대요. 주인이 채식주의자라서 다이어트도 저절로 될 걸요!” 두 달쯤 지나 지혜가 돌아왔다. 오랜만에 그애를 만날 생각에 나는 한국인마켓에 들러 삼겹살도 사둔 참이었다. 현관에서 지혜는 손을 내저었다. “오지 마세요, 언니. 저한테 냄새 많이 나요.” 그게 무슨 상관이야, 지혜를 덥석 안으려던 나는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빗물을 받아쓰는 농가에서 샤워라는 건 꿈도 못 꿀 일이었고 하루에 손바닥으로 빗물을 딱 두 번 덜어 세수만 하고 지냈단다. 현관에 선 채로 옷을 벗고 욕실로 뛰어가 한참을 씻었다. 빨랫감을 돌린 세탁기에서는 한 달이 넘도록 냄새가 빠지질 않았다.

지혜는 농가에서 있었던 일을 쉼 없이 떠들었다. 매일매일 채소를 튀겨먹어서 도리어 살이 쪘다는 이야기, 저녁이면 램프를 켜놓고 마카다미아를 깨먹은 이야기, 전직 화가였나 작가였나 했던 주인남자는 지혜의 일기를 펼쳐놓고 어색한 영어문장들을 고쳐주었단다. 며칠 뒤 지혜는 또 다른 농가로 떠났다. 1년을 그렇게 떠돌았다. 호주에만 우프가 있는 게 아니다. 세계 곳곳에 있고 놀랍지만 한국에도 우프 농가가 있다. 청춘들이 가 볼 곳은 이렇게나 많다. 게다가 곧 방학이잖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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