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최순실 사태’와 관련해 장기전을 작정한 모양이다. 100만명이 모인 광화문 촛불집회의 ‘하야’ 외침이나 야권의 퇴진 요구를 일축하면서 ‘법대로 하자’는 기류가 강하다고 한다. 청와대 관계자는 16일 “법률의 테두리 안에서 대통령 권한을 최대한 총리에게 이양하고 의혹에 대해서는 검찰과 특검 조사를 통해 진실을 밝히겠다”고 말했다. “어떻게 의혹만 갖고 대통령에게 내려오라고 할 수 있느냐”고도 했다.
이런 언급에 미루어 박 대통령은 국회가 추천하는 총리를 임명해 그에게 내각 통할권 등 헌법이 정한 범위 내에서의 권한을 이양하겠다는 입장을 이미 밝힌 만큼 야당이 받느냐 마느냐의 문제만 남아 있다는 생각인 것으로 들린다. 또 대통령의 법 위반 여부와 상관없이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까지 상황을 끌고 갈 각오인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청와대 관계자가 “탄핵은 국회가 결정할 문제로 절차상 받지 않을 수 없다”고 한 것도 대통령의 권한 정지가 법적으로 결정될 때까지는 스스로 물러서지 않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비선 실세의 국정개입과 날로 뚜렷해 지고 있는 대기업 손목 비틀기 정황만으로도 국민 다수가 이미 대통령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도덕적 판단을 내렸지만, 박 대통령이 계속 ‘법대로’를 외치며 버틸 경우 마땅한 수단이 없다. 제기된 의혹과 범죄 혐의를 벗는 데 얼마나 자신감을 갖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도덕적 책임 또한 그에 못지 않게 무겁다. 또 대통령의 안위나 체면 손상보다 국가 최고지도자로서 ‘망가지고 있는 나라’ 걱정부터 해서 마땅하다. 몇 달의 시간이 걸리는 특검조사나 탄핵까지 고려하면서 현재의 국정마비 상태를 계속 끌고 가려는 생각이 안이하고도 무책임하다. 적어도 최씨 국정개입과 관련한 검찰 조사와 수사 내용에 대한 결과가 나올 때 자신의 거취 문제를 포함한 국정 정상화 방안을 명쾌히 하지 않으면 나라가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
아울러 야권도 민심에 기댄 퇴진 압박에만 치중할 게 아니라 국정 정상화 로드맵에 합의해국민에게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야3당의 요구가 중구난방인 것은 물론이고, 문재인 안철수 손학규 등 대선 주자들마저 저마다의 방안을 쏟아 내니, 국민 혼란이 더하다. 야권이 국정 정상화의 선결조건으로 내세우는 ‘대통령의 퇴진 선언’마저도 하야를 의미하는지, 아니면 다양한 강도의 ‘2선 후퇴’를 뜻하는지부터 모호하다. 야권이 분명한 국정 정상화 방안을 가지고 적절한 시기에 대통령과 담판하는 외에 국정의 장기표류는 피할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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