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기 싫어증’ 페이크 커버
별도 제작해 1500부 한정 공급
“회사 상사들 눈치 보여서 책을 들고 다니거나 선물로 주고 받는 데 지장이 있지 않을까?” 시작은 단순한 의문이었다. 이를 역발상으로 이용해보기로 했다. 책의 원래 제목은 ‘실어증입니다, 일하기 싫어증’이지만, 이 제목이 적힌 표지 위에 덧씌울 수 있는 커버를 따로 만들었다. 그 커버의 책 제목은 ‘싶어증입니다, 일하고 싶어증’이라고 되어 있다. 부제는 ‘출근이 행복한 사람들의 비밀’이고, 그 아래 그림은 야근과 성과 달성에 매진하는 행복한 직장인들의 표정을 담았다.
도서출판 오우아는 직장 생활의 애환을 담은 전작 ‘아, 보람 따위 됐으니 야근수당이나 주세요’의 인기에 힘입어 그림작가 양경수의 ‘실어증입니다, 일하기 싫어증’을 낼 계획이다. 문제는 풍자라곤 하지만 책 제목이 너무 노골적이라는 대목. 해서 별도의 커버를 제작해 온라인 서점 주문 고객들에게 한해 1,500부 한정으로 공급키로 했다.
이것도 정색하고 숨기기보다는 재미있게 웃을 수 있는 이벤트 상품처럼 ‘페이크 커버’(속임수 표지)를 따로 제작한 것이다. 이연실 오우아 편집팀장은 “커버 인쇄를 맡은 인쇄소에서 ‘책 제목하고 다른 데 사고 난 것 아니냐’면서 인쇄를 중단하고 문의해오기도 했다”면서 “페이크 커버라고 하지만 나름대로 요즘 트렌디한 자기계발서의 경향을 담아내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다”고 말했다.
페이크 커버 이름도 ‘출근용 커버’라 정했다. 페이크 커버 뒷면엔 ‘매일 아침 회사로 향하는 발걸음이 행복해지는 기적의 에세이’ 같은 흔한 문구가 들어 있다. 이 팀장은 “재미있다는 입소문이 SNS를 통해 조금씩 돌고 있다”면서 “시장 반응이 좋으면 출근용 커버 제작을 조금 더 늘리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출판 불황 속에 ‘표지 마케팅’이 새로운 기법으로 등장했다. 재미있거나 가치 있다는 입소문이 돌면서 초판 판매에 힘이 실리는 방식이다. ‘실어증입니다, 일하기 싫어증’이 유머를 담았다면, 이에 앞서 지난 5월엔 북스피어 출판사가 일본 미스터리 작가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 ‘사라진 왕국의 성’을 두고 벌인 표지 이벤트는 화제성을 담았다.
이 소설을 다 읽은 일본 여고생이 학교 칠판에다 소설의 무대가 되는 성을 정교하게 그린 뒤 트위터에 올려 크게 화제가 됐다. 이 여고생이 그린 성 그림을 담은 별도 표지를 제작해 초판 5,000부 한정으로 공급했다. 당시 이 초판본을 구입한 독자들은 SNS나 블로그 등에 표지 사진을 잇달아 올리면서 입소문을 내는 데도 큰 도움을 줬다.
김홍민 북스피어 대표는 “‘초판 한정’이벤트는 출판사의 판매에도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책이 나오자마자 사주는 충성도 높은 독자들에 대한 감사의 표시도 된다”면서 “다만 오프라인 서점들은 한번 더 신경써야 하다 보니 이런 이벤트에 소극적인 점이 아쉽다”고 말했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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