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김서령의 길 위의 이야기] 시험날

입력
2016.11.16 14:08
0 0

나는 학력고사 마지막 세대였다. 지금의 수능과는 달리 내가 지원한 학교에 가서 시험을 봐야 했다. 엄마는 가톨릭 신자이지만 점을 보고 왔다. 딸과 상극이니 시험장에 절대 따라가지 말랬다며 엄마는 고모에게 몇 번이나 전화를 걸어 부탁을 했다. “도시락엔 꼭 콩나물국 끓여줘라. 밥 질게 하지 말고.” 시험날 머리가 콩콩 잘 뛰라고 콩나물국을 끓여줘야 한다는 거였고, 밥이 질면 시험을 죽 쑬 수도 있다는 거였다. 고모는 된밥과 콩나물국을 보온도시락에 잘 담아주었다. 함께 지원했던 단짝 친구는 점심시간이 되자 도시락을 들고 내게 달려왔다. 추운 날, 공대 건물에서 뛰어오느라 친구의 코가 빨갰다. 얼마 안 가 합격자 발표가 났고 나는 합격을 했지만 친구는 떨어졌다. 불합격 통보를 받은 친구가 울면서 집을 나가는 바람에 밤늦도록 그애를 찾느라 어두운 골목을 뛰어다녔다. 단 하루의 시험으로 결정되는 학력고사 제도에 우리는 불만이 말도 못했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의 입시 시스템을 듣자니 차라리 그때가 백 번 낫다는 생각이다. 정석수학과 성문영어만 있으면 되었고 그래서 개천의 용들도 허다했다. 공평한 시절이었다는 말이다. 아이 혼자 감당할 수 없는 복잡다단한 입시에 엄마도 아빠도 함께 인생을 걸고, 돈이나마 보태주지 못하는 조부모는 미안한 마음에 안부도 묻지 못하는 지금은 정말 이상하다. 엄마는 시험날 아침 콩나물국 도시락을 싸주고 아빠는 시험장에 데려다주며 볼에 응원의 뽀뽀 한 번 해주는 걸로 할 일이 끝나야 하는데. 조부모야 시험 전날 전화 한 통 해주시면 고마운 거고. 그래야 모두가 자유로워질 텐데.

소설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