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은 성층권인데, 정치는 지하에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판단과 행동 불능 상태라는 건 여권에서조차 인정하는 사실이다. 친박계는 “그러니 우리가 지켜야 한다”로, 비박계는 “그러니 퇴진이 답이다”로 갈릴 뿐이다.
사태 수습의 ‘골든타임’을 놓친 박 대통령은 ‘100만 촛불’의 민심을 철저하게 외면하고 있다. 정치학자들은 “고집만 있고 판단은 없다”(김형준 명지대 교수)고 걱정한다. 사실 이젠 대통령에게 기대조차 않는 것 같다. 정치권이 국회 본회의 통과부터 특별검사의 수사(120일) 결과를 바탕으로 한 헌법재판소의 심판(180일)까지 최대 300일이 걸리는 탄핵을 거론하는 배경도 이 때문이다. 박 대통령 자신의 의지로 결정해야 하는 하야나 퇴진의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청와대는 최근엔 박 대통령과 관련한 여러 의혹 보도까지 일일이 해명하면서 권력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친박계는 박 대통령의 든든한 우군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이정현 대표는 15일 자신이 소집한 3선 이상 중진 의원 간담회에 의원 단 한 명이 왔다가 주위의 항의에 그마저도 발길을 돌리는 수모를 겪고도 우뚝하다. 이 대표의 즉각 사퇴를 요구하면서 ‘당 해산’이라는 배수진을 친 비박계도 딱히 수가 있는 건 아니다. 한 초선 의원은 “이 대표가 사퇴하면 ‘그래서 그 다음엔?’이라는 질문에 답이 없다”며 “그러니 어떤 주장에 동조해야 할 지 우리(초선)도 우왕좌왕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비박계 잠룡인 김무성 전 대표가 탄핵을 주장하지만, 그에 동조하는 의원이 얼마나 될지 정확히 셈도 못하고 있다.
국민의 근심을 보태기는 야당도 마찬가지다. 제1야당과 제2야당의 유력 대선주자인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와 안철수 국민의당 전 공동대표는 거국중립내각 구성 등 정국 수습안을 두고 갈등을 빚더니 이제는 각각 거리로 나가 대통령 퇴진운동을 벌인다. 야권이 똘똘 뭉쳐 정국 해법을 제시하고 추동 해도 모자랄 판에 추미애 민주당 대표는 박 대통령에게 양자회담을 불쑥 제안했다가 균열만 만들었다.
원로들은 “믿을 건 국민뿐”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원종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의지라도 있으면 능력은 없어도 머리를 맞대면 수는 찾아지는데 지금 정치권은 능력도, 의지도 없어 큰 일”이라며 “위기마다 나라를 살린 똑똑한 국민이 혁명을 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4ㆍ19 혁명과 6ㆍ10 항쟁으로도 만들지 못한 새 질서를 시민이 만들어야 할 때라는 의견도 있다.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은 “민주화 이후 정치 지도자들이 새로운 국정원리를 만들지 못해 아직도 권위주의와 재벌 중심의 성장주의라는 ‘박정희 시대’가 존속하고 있는 것”이라며 “시민의 힘, 국민적인 에너지로 시대청산을 완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지은 기자 lun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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