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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현의 유행어 사전] 성난 백인

입력
2016.11.15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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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그리 화이트(angry white)’를 번역한 말이다. 정치-사회적으로 분노하고 있는 하층 백인들을 가리키는 이 말은 2016년 미국 대선 결과에 대한 언론 보도에서 트럼프의 주된 승리 요인으로서 거론되고 있다.

이번 대선에서 트럼프는 전체 득표수에서 힐러리보다 뒤졌다. 트럼프가 당선된 것은 득표수와는 무관하게 각 주별로 배정된 선거인단의 합계로 승패를 가르는 미국의 독특한 선거제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선거인단 수에 관한 현재까지의 잠정 집계에 의하면, 트럼프는 과반수 270명을 넘는 290명을, 클린턴은 228명을 획득했다. 클린턴으로서 매우 아쉬운 것은 플로리다(29명), 펜실베이니아(20명), 미시간(16명)에서의 결과이다. 클린턴은 각기 약 12만 표(1.3%), 6만8,000 표(1.2%), 1만2.000 표(0.3%)를 뒤졌다. 이 중 두 곳에서만 이겼어도 클린턴이 유리천장을 깨뜨릴 수 있었을 것이다. 오바마는 2008년과 2012년에 이 세 곳 모두에서 승리했다.

미국 주요 언론에 발표된 출구 조사 통계에 의하면, 백인 남성 중에서 대졸 미만 학력을 가진 사람들은 트럼프와 클린턴을 각기 72%와 23%의 비율로 지지했다. 대졸 이상의 학력의 백인 남성 비율은 54%와 39%가 된다. 학력에 따른 상당한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어쨌거나 백인 남성들 전체는 명백하게 트럼프를 지지했다. 즉, 남성들 전체로는 53대 41의 비율로 트럼프를, 여성 전체로는 54대 42의 비율로 클린턴을 지지했다고 한다.

좀 더 공인된 객관적 통계 자료를 가지고 더 면밀히 검토해야 하겠지만, 위의 출구 조사자료에 의한다면, 하층 백인 남성들 대다수가 트럼프를 지지했을뿐더러 중산층 이상의 백인 남성들도 꽤 많은 숫자가 트럼프를 지지했다고 추정할 수 있다.

그런데, 소득 변수만을 가지고 실제를 뜯어보면, 이번에 5만달러 미만의 경우에는 반수 조금 넘는 다수가 클린턴을 지지했고, 5만달러 이상에서는 과반수 조금 안 되는 다수가 트럼프를 지지했다. 2008년과 2012년에도 소득이라는 변수에서 오바마를 다수로 지지한 계층은 5만달러 이하의 사람들이었다.

클린턴에게 치명적인 점은, 특히 3만달러 이하의 소득 계층은 2008년에는 65%가, 그리고 2012년에는 63%가 오바마를 지지했음에 반해서, 이번에는 53%만이 클린턴을 지지했다는 것이다. 반면에 2012년에는 3만달러 이하 계층의 35%가 공화당의 밋 롬니를 지지했었음에 반해서 이번에는 41%가 트럼프를 지지했다. 출구 조사만 놓고 본다면, 이번 미국 대선에서는 과거에 비해서 더 많은 최하층 주민이 결국 공화당 후보를 지지한 것이다.

2012년의 한국 대선과 이번 미국 대선을 비교한다면, 최악의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는 것이 공통점이지만 다른 점도 있다. 그것은, 한국 사람들은 모르고 박근혜를 뽑았다는 것이고 미국 사람들은 알고도 트럼프를 뽑았다는 것이다. 그것은 지난 12일 100만이 넘는 것으로 추산되는 사람들이 박근혜 퇴진 촉구 촛불집회에 참여했다는 사실에 의해서 확증된다.

모르고 뽑은 것과 알고 뽑은 것 사이의 차이를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것일까. 힐러리가 샌더스와 경선하던 지난 3월 진보적이고 똑똑하고 매력적인 여배우 수잔 서랜던은 이렇게 말했다. “클린턴은 15달러 최저 임금을 위해 투쟁하고자 하는 의지도 없어요. 그러니 이전에도 그녀를 위해 투표를 안 했던 사람들이 왜 지금 그녀를 지지하려고 하겠어요?” 이런 발언에 기댄다면, 진보 성향의 미국 유권자 상당수는 클린턴이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기득권층의 일부라서 그녀를 지지하지 않은 것이다.

반면에, 기득권층을 제도 정당으로서 대변해 온 공화당은 그 자체로는 기층 민중 내지는 하층 백인 남성들의 변화 욕구를 절대로 채워줄 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트럼프가 기성 정치인들을 죄다 물리치고 대선 후보가 되어서는 마침내 대통령 자리까지 낚아챈 것이다. 하지만, 성난 백인들이 원하는 대로 미국이 변할 수 없음은 분명하다. ‘신자유주의 글로벌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미국이라는 국가는 절대로 위대해질 수 없기 때문이다.

이재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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