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 콘텐츠는 눈과 귀엔 쏙 들어오는데, 마음에 남진 않죠. 단지 오락적인 효과만 준다라고 할까요?”
중국의 문화 연구학자인 리우지엔화(劉建華) 윈난대 교수는 한류의 도약을 위해 “콘텐츠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최근 한국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조언했다. 중국 내 한류 콘텐츠에 대한 열광의 주기가 짧아진데다, 해외에서의 파급력 또한 약해져 돌파구가 필요한 게 현실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리우 교수는 콘텐츠의 “보편성 확보”를 꼽았다. 인간의 삶 등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소재로 익숙함을 주고, 보는 이로 하여금 마음에 오래 남을 수 있도록 울림을 주는 이야기를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배우 전지현과 김수현이 나와 인기를 끈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2013)와 이영애가 열연한 ‘대장금’(2003)의 성공 사례를 비교하면 이해가 쉽다. ‘별에서 온 그대’는 대륙을 흔들었지만, 쿠바 등 100여 개국에 수출된 ‘대장금’과 비교하면 세계적인 반향을 이끌어 내진 못했다. 주인공이 외계인(‘별에서 온 그대’)이란 소재는 신선했지만, 역경을 헤치고 일어서는 인물의 성장과 음식(‘대장금’)만큼 시청자들의 가슴에 스며들긴 어렵기 때문이다. 리우 교수는 ‘새로움도 보편성에 기반해야 폭발력을 줄 수 있다’고 본다. 이 단계를 거쳐야 한류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국제 문화 상품”에서 현지 문화에 더 깊숙이 뿌리 내릴 수 있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 결정 같은 정치적 요인에 흔들리지 않고 한류를 지킬 수 있는 비결이기도 하다. 리우 교수는 “중국 소비자들이 한류를 친숙하게 여긴다고 해도 근본적으로 한류는 국제 문화 상품”이라며 “갑자기 정치와 경제 환경이 바뀌어 (한류 억제)정책이 나오면 중국 소비자들이 바로 떠날 수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류 콘텐츠가 현지 소비자들에 자연스럽게 스며들도록 하기 위해 업계에서는 한·중 합작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한류 콘텐츠의 창의성을 살리면서 현지 문화에 맞게 포맷과 내용을 수정해 이질감을 더는 방식이다. 리우 교수는 한·중 합작의 좋은 예로 예능프로그램 ‘아빠, 어디가’를 들었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중요하게 여기는 유교 문화에 대한 양국의 공통된 이해를 바탕으로 오락을 넘어 가족에 대한 사회적 환기까지 불러 일으켜서다.
한국 연예인들도 적극적으로 중국 시장에 뛰어 들어 ‘문화 교류’에 앞장서고 있다. 걸그룹 소녀시대 멤버인 윤아는 올 초 중국 후난위성TV에서 방송된 사극 ‘무신 조자룡’에 출연해 큰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리우 교수는 더 나아가야 한다고 주문한다. 그는 “한국 연예 기획사들이 한국의 문화를 알리는 콘텐츠를 만들어 중국 연예인을 출연시키는 방법”을 제안하기도 했다. 그는 “이렇게 하면 중국 청년들 외 중년층에게도 한류를 각인 시킬 수 있고, 더 큰 시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내 업계는 중국 내 혐한 현상을 우려한다. “중국에서 한류는 5년 내 크게 위축될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도 나오고 있다. 중국 방송사들이 한국 제작진과 2~3년 전부터 협조해 예능프로그램 제작 수준을 많이 끌어 올리는 등 중국의 콘텐츠 질이 빠르게 좋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리우 교수는 중국에 “혐한은 없다”고 분석했다. 오히려 “한류에 대한 중국인의 사랑은 유별날 정도”라고 봤다. 청년들은 K팝 가수와 예능 프로그램에 열광하고, 주부들은 드라마에 충성도가 높다는 것이다. 리우 교수는 “중요한 건 콘텐츠”라며 “확실한 시장 평가를 해 중국 소비자들이 한국 문화 상품에서 무엇을 원하는 지를 계속 찾아내야 한다”고 충고했다.
그는 한·중 합작의 시너지 효과도 크다고 전망했다. 양국 시장과 콘텐츠의 힘을 키워 “미국 시장의 대항마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한국 정부가 지속 가능한 한류를 위해선 “(양국 사이)정치와 경제 등에서의 갈등 요소를 줄여 우호적인 국제 환경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밝혔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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