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아이디어, 정말 나쁘고 나쁜 아이디어(bad idea, really bad bad idea)입니다.”
14일 서울 서교동 창비학당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우리나라의 핵무장 주장에 대한 의견을 묻자 윌리엄 페리 전 국방장관의 언성이 한껏 높아졌다. 페리 전 장관은 김대중 정권 시절 북핵 해법으로 체제인정과 비핵화를 일괄적으로 주고받는 ‘페리 프로세스’로 유명한 핵협상 전문가다. 1960년대 이후 자신이 참여한 다양한 핵 협상 경험을 담은 ‘핵 벼랑을 걷다’(창비)를 내고 한국을 찾았다.
관심의 초점은 새로 당선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핵 문제를 어떻게 다룰 것이냐에 모였다. 트럼프는 후보 시절 “김정은과 햄버거를 먹으면서 핵협상을 하겠다”고도 했지만, 반대로 미군이 철수한 뒤 “한국과 일본의 핵무장을 허용하겠다”는 식으로 발언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일단 페리 전 장관은 “아직은 뭐라 판단할 자료가 없으니 국무장관, 국방장관 등 주요 직책의 인선결과를 지켜봐야 한다”면서도 “미 행정부에는 동맹의 가치를 중시하는 이들이 적지 않을 뿐더러, 그런 발언들은 후보 시절 나온 일시적 발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트럼프 발언의 무게감을 깎아 내린 것이다.
이어 페리 전 장관은 ‘전술핵’이란 개념 자체를 부정했다. 상대적으로 가벼운 핵무기를 일컫는 전술핵은 북핵에 대한 대응카드로 일각에서 거론됐다. 그는 “그런 건 체스를 둘 줄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소리”라면서 “모든 게임에서 나는 내가 둔 수가 상대를 꼼짝하지 못하게 하는 ‘최후의 한 수’라고 믿고 싶어 하지만, 상대의 반격이 뒤따르면 실제로는 최악의 수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전술핵 어쩌고 하다가 중국, 대만 등 주변국까지 자극하는 핵 도미노, 핵 군비경쟁이 일어날 위험을 봐야 한다는 것이다. 동시에 기술적으로도 ‘전략핵’과 ‘전술핵’을 구분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는 점도 지적했다. 페리 전 장관은 “딱 잘라 말해 ‘전술핵’이란 것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못박았다.
페리 전 장관은 북핵 위기 해법이 자꾸 타이밍을 놓치면서 지금은 목표를 ‘비핵화’에서 ‘검증가능한 감축’으로 낮춰잡아야 한다고 제안했다. 추가 핵개발, 추가적인 성능 향상, 추가적인 핵 기술 이전, 이 세가지를 막자는 주장이다. 이를 위해 중국에서 북핵 관련 이해당사자들의 만나는 회담을 개최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봤다. 페리 전 장관은 “북한의 변치 않는 목표는 첫째 김씨 정권의 보호, 둘째 체제에 대한 인정, 셋째는 경제개발로 지금은 첫째와 둘째를 위해 셋째를 희생하려는 형국”이라면서 “다만, 경제개발을 통해 북한과 협상할 여지는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페리 전 장관은 1994년 북한 영변 핵시설 타격설에 대해서도 털어놨다. 당시 미 클린턴 행정부는 북핵시설을 정교하게 타격하는 방안을 검토했고, 이 시나리오는 지금까지도 남북한 모두에게 가장 큰 두려움 가운데 하나로 남아 있다. 당시 국방장관이 페리였다. 그는 “시나리오를 검토하고 당시 워싱턴포스트에 이에 대한 칼럼이 실리도록 배후조종 했다는 이유로 내가 ‘전쟁광’이라 불리기도 했다”면서 “최후의 수단으로 검토한 것은 사실이지만 구체적 실행계획도 없었고 대통령에게도 보고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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