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승선이 눈앞에 보이는 긴박한 순간 전속력으로 달리던 경주마는 발을 헛디뎌 고꾸라지고 말았다. 말은 응급차에 태워진 채 경기장을 떠났지만 몇 주 뒤 싸늘한 시신이 되어 돌아왔다.
동물전문매체 도도는 지난 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경마 대회 중 하나인 호주 멜버른 컵에 참가했다 부상으로 안락사 된 경주마 ‘레드카도’의 사연을 최근 보도했다.
레드카도는 발을 헛디뎌 쓰러졌고, 대회 측은 사람들이 말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지 못하도록 초록색 방수포를 쳤다. 하지만 이를 구경하기 위해 몰려든 군중 때문에 천막은 결국 쓰러졌고 현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레드카도는 몸 상태가 괜찮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사람들의 걱정 어린 시선을 받으며 제 발로 일어나 가벼운 속보로 응급차에 올라탔다.
관중은 부상을 입은 레드카도를 응원했고, 말이 괜찮을 것이라 믿으며 환호했다. 며칠 후 빅토리아주 마사회는 레드카도가 편안한 상태이며 안정적으로 회복 중이라고 발표했다. 주치의인 멜버른 대학의 크리스 위튼 박사는 레드카도의 상처가 “생명을 위협할 정도는 아니다”고 했다.
하지만 몇 주 후 사람들은 전혀 다른 소식을 듣게 됐다. 레드카도의 다리 부상이 회복 불가능한 상태여서, 안락사 했다는 것이다.
매년 11월 첫째 주 화요일에 열리는 이 대회에서 죽은 말이 레드카도가 처음은 아니다. 벌써 네 마리의 말이 죽었다. 2013년 ‘베레나’는 경주로에서 안락사 된 이후 2014년에는 ‘어드마이어 라키티’와 ‘아랄도’ 두 마리의 말이 경기에서 얻은 부상으로 죽었다. 대회에 참가한 경주마들이 잇따라 죽자 호주의 한 앵커는 올해는 어떤 말이 사망할 것인가 저울질하는 풍자 방송을 했을 정도다.
이처럼 경주마들이 잇따라 죽어나가고 있지만 멜버른 컵은 호주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매년 약 10만명이 이 대회를 보기 위해 멜버른을 찾고, TV 시청자는 100만 명에 달한다. 그러다 보니 이 대회는 빅토리아 주에 가장 많은 돈을 벌어다 주는 수익 사업이 됐다. 지난 2014년에는 약 1억9,490만 호주 달러(한화 약 1,800억원)를 벌어들인 것으로 추산됐다.
사실 경주마 문제는 멜버른 컵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경주마 보호 연합에 따르면 호주에서만 지난 해 132마리의 경주마들이 반복되는 부상으로 사망했다. 사흘마다 한 마리의 말이 사망한 셈이다. 호주 동물 보호단체에 따르면 매년 2만5,000마리가 넘는 말이 도살되며 더 끔찍한 것은 말들이 죽음을 기다리는 동안 다른 말들이 살육되는 장면을 봐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이라고 해서 경주마의 처우가 나은 것은 아니다. 미국에서는 지난 해 484마리의 말이 경주로에서 사망했는데, 미국에는 말 도살장이 없어 멕시코와 캐나다로 말을 보내 도살한다.
경주마가 ‘은퇴한다’는 것은 그들이 초원에 가서 풀을 뜯고 일광욕을 즐긴다는 낭만적인 뜻이 아니라는 게 도도의 설명이다. 보통의 경우 은퇴는 도살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도축된 말들은 개사료로 사용되거나, 벨기에나 프랑스에 식용으로 수출되고 있다.
정유경 인턴기자(서강대 프랑스문화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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