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집회 수 차례 보고받아
靑 “현 상황 엄중한 인식” 불구
“대통령 책임” 등 언급 버티기
3차 대국민 사과ㆍ새누리 탈당
책임총리 임명 등 응할 수도
12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100만 개의 촛불이 타올랐지만, 박 대통령은 내내 침묵했다. 박 대통령은 7일 국회를 찾아가 국무총리 추천권을 여야에 넘기겠다고 선언한 뒤로 13일까지 6일째 청와대에서 칩거했다. 박 대통령은 분노의 촛불을 진화할 수단이 없다는 무기력한 ‘현실’과 국정에서 손을 떼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 사이에서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은 12일 밤 청와대 관저에 조용히 머물며 촛불집회 상황을 여러 차례 보고 받았다. 청와대로부터 1km 밖에 떨어지지 않은 경복궁역 사거리까지 행진한 100만 명의 “하야하라! 퇴진하라!”는 외침은 관저 뒤편의 북악산에 부딪힌 뒤 박 대통령에게 선명하게 전달됐을 것이다. 청와대 경내에선 13일 새벽 3,4시쯤까지 함성이 들렸다고 한다.
청와대 참모들은 12,13일 비상근무 체제로 청와대를 지키며 수습책을 논의했다. 평소 일요일 오후3시에 열리는 한광옥 청와대 비서실장 주재 수석비서관회의가 13일엔 오전10시에 열렸다. 참모들은 회의에서 나온 다양한 대응 방안들을 박 대통령에 보고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결재를 받아 청와대가 내놓은 입장은 ‘퇴진 거부’였다.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은 “박 대통령은 어제 국민 여러분의 목소리를 무거운 마음으로 들었으며 현 상황의 엄중함을 깊이 인식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대통령으로서 책임을 다하고 국정을 정상화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고 밝혔다.
청와대가 ‘대통령의 책임’과 ‘국정 정상화’를 언급한 것은 박 대통령의 자발적 퇴진 가능성을 일축한 것으로 해석됐다. 박 대통령의 도덕적 신뢰가 붕괴돼 정권이 회생할 가능성이 희박한데도, ‘식물 청와대’가 되는 것을 감수하고 일단 버티겠다는 뜻이다.
이날 청와대의 입장은 단 두 문장이었다. 청와대는 민심을 달랠 조치나 국정 공백을 메울 방안은 제시하지 않았다. 국정 수습책에 대한 청와대의 침묵은 내놓을 카드가 더 이상 없는 참담한 상황을 반영하는 것이다.
‘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박 대통령의 1,2차 대국민사과와 검찰ㆍ특검수사 수용, 총리 추천 권한의 국회 이양, 여야 영수회담 제안 등 그간 청와대가 제시한 정국 수습책은 모두 묵살당했다. 수습책의 내용도, 타이밍도 박 대통령을 불신임한 민심을 반영하지 못한 탓이다.
그러나 청와대가 마냥 손을 놓고 있을 분위기는 아니다. 대통령직을 지키려는 박 대통령의 의지가 상당한 만큼, 검찰 수사 상황과 여야의 움직임, 여론의 추이 등을 보고 이번 주 중 또 다른 수습책을 제시할 전망이다.
박 대통령이 3차 대국민사과를 발표해 거듭 고개를 숙이거나, 새누리당 탈당을 선언한 뒤 책임총리 임명ㆍ거국중립내각 구성 요구에 명시적으로 응하는 방안 등이 거론된다. 청와대 관계자는 “국정 정상화를 위해 ‘고심하고 있다’는 말 속에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박 대통령이 어떤 방안을 제시한다 해도 ‘하야 민심’이 누그러질 가능성은 희박하다.
최문선 기자 moon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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