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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벽 오르는 시위대 향해… 시민들 “내려오라” 비폭력 외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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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벽 오르는 시위대 향해… 시민들 “내려오라” 비폭력 외침

입력
2016.11.1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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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오후 청와대로 가는 길목인 서울 종로구 내자동 경복궁역 입구에모인 시민들이 차벽을 세우고 청와대로의 행진을 막는 경찰과 대치 하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ssshin@hankookilbo.com
12일 오후 청와대로 가는 길목인 서울 종로구 내자동 경복궁역 입구에모인 시민들이 차벽을 세우고 청와대로의 행진을 막는 경찰과 대치 하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ssshin@hankookilbo.com

“더 크게 외쳐보세요, 내려오라고.”

12일 밤 11시, 일부 시위대가 청와대로 향하는 길목을 막은 경찰 차벽 위로 올라가려고 하면서 서울 종로구 내자동로터리가 소란스러워졌다. 시민들은 목소리에 합을 맞춰 20여분 간 차 위로 올라가려던 이들을 말렸다. “내려오라”는 외침과 “청와대로 문을 열라”는 함성이 뒤섞였다. 위기감이 고조됐지만 시민들은 "우리끼리 싸우지 맙시다”라고 소리치며 분위기를 진정시켰다.

마지막까지 축제의 장과 같았던 광화문광장 인근과 달리 내자동로터리는 새벽까지 긴장감이 감돌았다. 청와대 방면으로 행진을 강행하려는 일부 시민이 지속해서 아찔한 상황을 연출했다. 오후 4시 민중총궐기 본 집회를 시작으로 내자동로터리 상황이 종료되기까지 장장 12시간 동안 시위대와 경찰의 직접충돌을 막은 것은 또 다른 시위대의 설득이었다.

서울광장을 출발한 시위대가 다섯 갈래로 나뉘어 경복궁역 앞에 집결한 시각은 오후 6시30분쯤. 시민들은 시작부터 ‘비폭력 시위’를 유도했다. “지금 당장 물러나라. 박근혜는 퇴진하라”고 외치면서도 술에 취한 시위자가 나타나면 “우리는 평화적으로 앉아요”라며 서로를 말렸다. 식사를 하지 못한 사람들과 경찰들에게 간식을 나눠주며 웃는 등 차분한 분위기도 이어졌다. 인천에서 온 김서규(48)씨는 “물리적 행동도 중요하지만 평화가 앞서가야 한다”며 “박 대통령을 내려오게 하도록 구호를 외치자”고 발언했다.

워낙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다 보니 작은 소란이 빚어지기도 했다. 농민단체 회원 일부는 청와대 영정 액자를 단 대형 상여를 차량에 싣고 경찰 저지선까지 몰고 들어오다, “평화시위를 해야 한다”는 시민들에게 발이 묶였다. 일부 시위대는 경찰과 몸싸움을 벌여 시위진압용 방패를 빼앗았다가 다른 참가자들의 중재로 돌려주기를 반복했다. 8명의 경찰이 몸싸움 중 탈진 등으로 부상했고, 집회 참가자 중에선 20대 남성이 쇼크로, 60대 남성이 저혈당으로 쓰려져 병원으로 이송됐다. 이날 집회에서 공무집행방해와 해산명령불응죄로 연행된 사람은 23명이었다.

13일 자정까지 경찰 추산 시위대 8,000여명이 이곳에서 경찰과 대치를 벌였지만, 충돌에 대한 두려움보다 시민들의 중재가 빛난 시간이었다. 차벽을 무너뜨리려는 시도도, 시민들을 위협하는 물대포도 없었다. 경복궁역 인근 사직로는 13일 오전 4시10분부터 차량통행이 재개됐다.

전문가들은 성숙한 시민의식이 반영된 결과라고 평했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는 “상대세력에게 빌미를 주는 폭력 시위보다 설득력과 실효성 측면에서 비폭력 시위가 훨씬 효과적이라는 걸 역사적으로 학습한 결과”라며 “지난해에는 조직화한 운동단체가 주축이었다면 올해는 사회단체뿐만 아니라 정부에 분노한 시민들로 시위의 무게중심이 옮겨간 것”이라고 분석했다. 임운택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법원에서도 시민들의 의지와 진심을 통제해선 안 된다고 판단했다”라며 “전국민적 분노가 촉발된 현 시국에선 시위대와 경찰 모두 폭력적인 시위나 강경 진압이 통하지 않는다는 문제의식을 공유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김정현 기자 virtu@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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