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10월 미결수 12명이 집단 탈주해 서울의 한 가정집에서 인질극을 벌였다. 556만원을 훔친 죄로 징역 7년을 살았던 지강헌. 보호감호 처분으로 10년 옥살이를 더 해야 하는데 불만을 품고 세상 밖으로 뛰쳐나온 그가 대치하던 경찰을 향해 외쳤다. “돈 없고 권력 없이는 못 사는 게 이 사회다. 전경환의 형량이 나보다 적은 것은 말도 안 된다. 돈이 있으면 판검사도 살 수 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우리 법이 이렇다.” 73억원을 횡령한 전두환 전 대통령의 동생 경환씨는 징역 7년을 선고 받았으나 2년 만에 풀려났다.
▦ 1997년 1월 한보비리가 터졌다. 권력이 개입해 5조7,000억원의 특혜대출이 이뤄진 건국 이래 최대 금융부정 사건이었다. 배후에는 당시 ‘소통령’으로 불리던 YS의 차남 현철씨가 있었다. 검찰은 그를 소환 조사도 않고 서둘러 봉합했다. 한 기업인이 ‘마피아의 총대로 만든 잣대’라는 제목의 광고를 냈다. 그는 “이 나라 개혁에 가장 큰 걸림돌은 부패하고 무능하면서도 교활하고 줄을 잘 타는 검찰 수뇌부”라며 “국민에게 고용된 검찰이 부정을 은폐하고 수사내용마저 제대로 밝히지 않는 것은 명백한 배임”이라고 질타했다.
▦ 한보비리가 터진 지 20년이 지난 지금, 검찰 마피아의 유권무죄 잣대는 여전하다. 검찰은 당초 시민단체가 고발한 최순실 사건을 서울지검 형사8부에 배당했다. 통상 고발 사건을 처리하는 부서다. 최순실을 잡범 취급한 건 그냥 수사 시늉만 내겠다는 얘기다. 검찰 인사를 장악했던 우병우 전 민정수석에겐 대놓고 비굴했다. 그가 수석에서 물러나자 마지못해 소환했고 고발 114일이 지나서야 자택에 대한 압수 수색을 했다. 국정농단 사건의 핵심 중 핵심인 최순실을 소환한 건 귀국 31시간이 지난 뒤였다.
▦ 유권무죄가 검찰만의 잘못은 아니다. 묵묵히 본분을 다하는 검사는 불이익을 받고, 정권 눈치를 잘 보는 검사가 승승장구하는 풍토 탓이 크다. 검찰의 생명은 정치적 중립과 공정성이다. 검찰 인사의 중립성 확보, 비대해진 검찰권력의 축소가 필수적이다. 그렇다고 정권 핑계만 댈 건 아니다. “정당하게 수사하다 목 날아가면 어떤가. 검사 그만두면 먹고 살 길이 없나.” (심재륜 전 고검장) 박근혜 대통령이 이번 주 현직으론 헌정 사상 처음 검찰 수사를 받는다. 그 결과에 검찰 조직의 미래가 달렸다.
고재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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